프라이스클럽을 지척에 둔 영등포 조광시장상인들은 요즘 풀이 죽어있다.

영등포삥시장,또는 도깨비시장으로 알려진 덤핑시장인 조광시장을 찾던
소매상들의 상당수가 프라이스클럽이 생겨난 후 구매선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지를 전문도매하는 한 상인은 "거래처들이 프라이스클럽이 생긴후
70-80%는 옮겨갔다"면서 한산한 골목을 가리킨다.

종전에 이맘때면 거래선과상인들이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북적대고 차가
빠지지 않아 곧잘 싸움박질이 벌어지곤 했던 곳이다.

무자료덤핑물건을 취급하던 이곳도 이제는 한물 간 느낌이다.

지난해 국세청의 일제단속으로 된서리를 맞은 후 크게 위축됐지만
프라이스클럽이 등장하고나서는 완전히 매기가 죽었다.

럭키 영업직원들도 자체조사결과 적어도 20%정도는 거래가 줄었다고
어림잡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뽀삐 70m짜리 18롤을 프라이스클럽에서는 5천9백원에
팔고 있다.

10롤짜리를 취급하고 있는 조광시장상인은 계산기를 뚜드려보더니
"2백원정도는 프라이스클럽이 싸다"고 말한다.

종전의 거래처들이 다시와도 "프라이스클럽은 얼마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받느냐"는 말들을 한다면서 기가 죽어있다.

장사가 안되면서 전업을 모색하는 상인들이 요즘 부쩍 늘었고 점포를
내놔도 안팔려 점포세도 떨어지는 추세라는 푸념이다.

기존 거래처들이 프라이스클럽을 선호하는 것은 가격도 싼데다 자료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곳 상인들은 말한다.

프라이스클럽에서 개인회원(골드회원)으로 사면 세금계산서를 끊을
필요가 없고 이만큼은 동네에서 부담없이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장상인들의 경우 요즘 매입세금계산서를 대부분 끊어받는데다
매출세금계산서도 발행하므로 기존거래선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프라이스클럽은 회원을 비즈니스회원과 골드회원(일반회원)으로
구분해서 모집한다.

구매때 세금계산서를 발급받는 비즈니스회원의 자격은 등록사업체대표,
등록법인대표로 돼있다.

회비는 일반회원과 똑같은 3만원. 추가로 골드회원가입을 신청할 경우는
본인이나 가족이 각각 하나씩 회원권(각1만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주인이 직접 장을 보는 구멍가게의 경우 비즈니스회원이 아니어도
무관하며 비즈니스회원이라도 따로 일반회원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일반
회원처럼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않을 수도 있다.

주류도매상들이 요즘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비즈니스회원에게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를 구별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POS시스템을 갖춘 프라이스클럽이 매출을 누락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소매점이 이같은 방식으로 프라이스클럽과 같은 할인점들을
이용한다면 이는 프라이스클럽 등이 무자료거래의 또다른 경로 역할을
할 수있다는 얘기가 된다.

유통업계관계자들은 "프라이스클럽과 같은 할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므로 기존영세유통업자들이 타격을 받을 것은 틀림없다"
면서도 "이것이 무자료거래를 위축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단언한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부가가치세율이 무자료거래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
에서 소위 가격파괴를 들고나온 할인점들이 무자료거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할인신업태는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유통장악
으로 나타나겠지만 무자료거래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신업태들이 직접적으로 무자료시장에서 물건을 받거나 무자료
시장에 물건을 준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무자료시장의 위축을 전제로 출발한 프라이스클럽 등 할인점이
무자료시장과 공존하며 살길을 찾는다는 역설도 나오는 셈이다.

< 채자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