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육원장 >

동물, 특히 말그림으로 유명한 스터브스라는 영국화가가 있었다.

그가 그린 한폭의 말그림이 소장미술관의 재정난으로 미국에 팔려갈 운명에
처한적이 있었다.

당시 이를 지켜본 영국인들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해 그 그림을 영국에 남게했던 것이다.

10년쯤 거장 루벤스가 그린 우리조상의 초상화가 국내에 소개되었을때
적지않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어떻게 루벤스가 조선사람을 만나게 됐을까, 초상화에 나타난
인물이 과연 우리나라사람이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었을뿐 우리의 모습이
담겨진 이영화를 우리의 것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은 듣지 못했다.

지난90년1월 문화부가 발족되면서 문화예술의 진흥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져 왔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도 그러한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예술에 대한 민간차원의 후원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여러 종류의 모금행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문화예술을
간직하려는 범국민적 모금행사는 별로 없었던것 같다.

그만큼 우리에겐 문화시민으로서의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림 한폭을 지키려고 거국적인 모금은동을 벌인 영국인들처럼 우리도
루벤스의 한국인 그림을 가져 오자는 운동이 벌어졌으면 얼마나 흐믓할까
상상해 본다.

이점은 내가 일하고 있는 음악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단지 어디서나 피아노학원이 성황을 이루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작 유능한 음악교사는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부각되는 "세계화"를 위해서도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우리의 좋은
전통과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차원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세계속의 한국을 꽃피울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