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훈 < 도시교통연구소 소장 >

차이는 있지만 보통 운전자가 한번 출퇴근하는데 삼십번정도는 차선을
바꾸게 된다.

물론 차선을 변경하는 차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도 비슷한 횟수가 된다.

정상적인 운전자라면 편의를 제공받고 또 양보를 하는 것이 서로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현재 우리의 도로위에서는 이 균형이 제대로 유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보하는 사람보다는 편의를 제공받으려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아서
교차로나 진입램프에 운전자들의 욕심이 그대로 차량으로 꼬여 있다.

많은 운전자들이 자신은 양보하려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양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입장에 있는 운전자는 ''나는 합법적인 차선
변경이다''는 주장을 펴게 되고 양보를 강요당하고 있는 운전자는 ''당신은
끼여들기 위해 얌체운전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리적 갈등을 여러번 겪고 나면 이제 운전자들은 차선변경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끼여드는 사람은 혹시나 옆차선의 운전자가 차선변경 의도를 눈치챌까봐
위장을 한다.

게릴라식으로 갑자기 끼여들지 않으면 여간해서 차선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입장에 놓인 운전자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끼여들지 모르기 때문에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좌우에 있는 가상의 침입자가 혹시나 끼여 들지 않을까 하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의 차선으로 끼여들기만 한다면 우선 요란스런 경적으로 경고를
하고 그래도 침입행위를 계속한다면 전조등의 레이저 빔으로 확인사살을
해버릴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정말 살벌한 도로분위기다.

우리의 도로 위에서는 여간해서 문화의 비상구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이유를 운전자의 양심이 부족한데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잘못을 범하는 이유중에는 애매한
교통관련 법류도 한몫을 단단히 거들고 있다.

현행 법규는 실제 도로상황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운전자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차선변경의 도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차선을 변경할 운전자는 깜박이를 켠 상태에서 적어도 세대
정도는 보내고난 후에 차선을 바꾼다거나 차선변경을 허용하는 입장에서는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전조등을 깜박거릴 이유가 있다면 양보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조용히 양보하자는 내용으로 말이다.

나는 가끔 높은 빌딩위에서 도로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 본다.

그때 느낄수 있는 것중의 하나는 차량 한두대정도 양보한다고 해서 결코
늦게 가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이다.

차선변경 방법을 새롭게 정하는 숙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도로위에서
질서를 찾는 기본은 운전자들이 서로 역지사지의 운전을 실천하면서 양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