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청나라의 태도를 확인한 모리는 즉시
본국의 외무경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은 데라지마는 매우 기분이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중얼거리고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청나라 따위가 뭐 잠자는 사자라구? 흥,덩치만
컸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사자라면 아마 종이로 만든 사자 거야.허허허." 기분이 마냥 흡족한
것은 비단 청나라의 그와같은 태도를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사이 자기가 접촉해본 몇몇 서양 공사들도 모두 반대하고 나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은근히 호기심을 가지는 듯했다.

일본이 조선국의 완고한 쇄국을 과연 개국으로 전화시킬수가 있을는지하고
말이다.

영국공사 퍼크스는 호기심을 넘어서 이 기회에 일본이 조선국의
빗장을 열어젖혀 주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였다.

어느 나라가 앞장을 섰든 일단 문이 열리면 뒤따라 밀고들어갈 수가
있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와 청나라가 조선국과 국경이 인접해 있고 이해관계가
깊으니 사전에 잘 양해를 구해두는게 좋을 거라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일본이 대만 정벌에 나섰을때 중립을 표방하며 실질적으로 반대했던
것과는 판이한 차이였다.

그때는 청나라를 의식했고 또 일본이 대만을 삼켜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었지만 결과가 별게 아니어서 이번에는 조선국 개국을
부추겨 가지네는 모임승차를 하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며칠뒤 데라지마는 미국공사 빙검을 만났다.

오찬을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빙검 역시 영국공사
퍼크스와 거의 다를바 없는 그런 태도였다.

강화도 사건의 전말과 전권대사 파견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은 다음
일본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자 빙검은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물었다.

"대사 일행만 가게 되나요,아니면 군함도 함께 가나요?" 데라지마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물론 군함도 함께 가지요.

맨손으로 가서양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말하자면 포함외교군요"
"그렇습니다.

이십이삼년전에 귀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우라가의 앞바다엘
나타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조선국의 강화도 앞바다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허허허." 빙검은 재미있다는 듯이 조금은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