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

[[[ 경기조절정책의 한계 ]]]

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의 최우선과제를 물가안정에 두고 있다.

지난93년1월을 바닥으로 상승세를 타고있는 경기가 과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현재의 경기확장국면을 되도록이면 연장시켜 보자는
의도이다.

그러나 경제는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아 뜻대로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경기조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희생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경기조절의 반대급부가 무엇인지,그리고 과연 내년도 경제
정책의 최우선과제가 경기조절이어야 하는지 짚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경기조절을 위해 내년에 사용될 주요정책수단은 통화긴축과 원화의 평가
절상이다.

통화관리를 통한 총수요억제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정책수단
이며 원화의 평가절상은 내년중 유입될 막대한 외화자금의 부담을 통화에만
전가시키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원화절상은 또한 수입물가의 하락을 통해 물가안정에 기여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수단들이 별탈없이 경기순환상의 정점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발휘할수 있을는지 크게 의문시 된다.

첫째 이유는 통화와 실물경제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화가 경기조절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통화량변동이 실물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계측이 가능하여야 한다.

지나친 통화긴축은 자칫 경기흐름자체를 바꾸어 놓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통화량과 실물경제
변수와의 통계적 안정성은 찾아 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총통화(M2)와 준통화(M3)의 괴리가 지금처럼 심화되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M2에 대한 통화긴축이 민간의 통화수요를 M2에서 M3로 이전
시키는 대체효과를 갖기 때문에 중심통화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M2의 경제적
효과를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둘째 금융시장이 크게 경직적인 우리나라에서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통화긴축의 효과가 경제 각 부문에 골고루 파급되지 못하고 중소기업
같은 일부 한계부문에만 집중되게 된다.

자금배분이 금리의 시장조절기능보다는 신용도와 안면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통화긴축에 의한 경기감속이 사회 일부문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각계의 화합과 균형발전이 요청되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식의 경기
조절은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셋째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원화절상이 국제수지를 악화
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기반자체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기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제성장률 5.6%중 절반이 훨씬 넘는 3.6%는 수출 증가의 직접적
인 기여분이며, 여기에 수출의 간접적인 승수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지난해
경제성장의 대부분은 수출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수출에 이상기류가 형성되는 경우, 우리나라 경제는 다시 침체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원화절상이 외화자금의 유입을 가속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원화절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감안한다면, 섣부른 원화 절상을 통한 경기감속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은 올해들어 이미 다섯차례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2.5%를 계속 넘어서면서
경기감속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리인하를 통해 미국이 지난번의 경기침체를 벗어났다는 점을 감안할때,
일연의 금리인상 조치들은 경제 팽창을 늦추고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금리인상은 환율의 하락(자국 통화가치의 상승)을 통해 무역수지
악화라는 비용을 수반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무역수지적자폭 확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리가 없다.

국제수지를 방어하기 위해서 과거와는 달리 직접적인 산업지원정책을
펴는 한편, 외환시장에의 개입이나 상대국에 대한 압력을 통해 달러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정책의 혼합(policy Mixing)과 국력을 바탕으로 경기조절 비용을 최소화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경기조절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질 못하다.

외부 상황 변화에 크게 좌우되는 우리로서는 정책수단이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하에서는 경기 국면을 진단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며, 경기의 평균 상승 기간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책의 실기가 발생할수도 있다.

경기의 회복국면에서 부양책이 시행되고 위축 국면에선 오히려 안정대책이
발동되어 정책대응이 경기 순환의 진폭을 심화시키곤 했던 것도 그 때문
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서비스라는 한정된 자원을 경기변동의 단기적인 기복을
조정하는 파인튜닝(fine tuning)에 쏟아넣기 보다는, 우리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열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