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범 < 종합무역상사협의회 회장 >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정상회담에서는 소위 "보고르"선언이
채택되었다.

요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18개국이 21세기 초반까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시차를 두고 완전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세계질서는 동서간의 이념대결 이후 경제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UR WTO로 이어지는 개방화와 EU NAFTA ASEAN등 지역화의 두가지 큰 흐름을
타고 급속히 변화해 가고 있는 양상이다.

역내권 산업의 보호를 위한 지역화는 결국 역외권 국가와의 경제적 대립을
야기시키겠지만 각종 관세 비관세장벽을 허물고 자유스러운 무역과 투자를
의미하는 개방화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국제화된 기업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기회로 볼 수 있다.

이에따라 요즘 우리기업들도 이러한 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내부경영혁신 운동을 벌이는 한편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는 사업전략을
수립하기에 분주한 실정이다.

특히 어느 업종보다도 세계경제 흐름에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종합
상사의 경우는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75년 정부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한 종합상사는
지난해 한국전체 수출의 43%이상을 점유하는등 20년간 수출한국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러나 수년전부터 이미 예견되어온 일이긴 하지만 국내 제조업체들이
대형화되고 직접 해외에 지사나 생산공장및 판매법인을 세우는등 국제화
되어감에 따라 과거 종합상사에 의존했던 수출입 기능및 현지 상권구축
업무를 직접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국내 대형제조업체들의 탈상사화는
종합상사로 하여금 사업전략면에서 구조적으로 일대 변신을 도모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국내를 주축으로 한 단순 교역업무 기능에서 탈피하여 과감히 세계
곳곳에 다양한 비즈니스 거점을 확보해 나가는 해외투자 중심의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일반기업들이 보유하고 있지 못한 종합상사 고유의 기능을
보다 고도화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대형제조업체와는 달리 규모나 능력면에서 국제화를 추진하기가
어려운 국내 중소기업들과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는등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여 동반자 관계로서 중소기업의 국제화를
이끌어 나갈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경영요소별 최적지 발굴및 배합을 통해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전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자원 노동 기술 자본 물류등 각 경영
요소별로 비교우위를 갖는 최적의 지역을 선정하여 생산 판매 유통 금융
자원개발 연구개발등의 거점을 구축함으로써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과
비즈니스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국내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노동집약적인
품목생산의 경우 그대로 사장시키기 보다는 그동안 축적된 생산및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적의 지역을 찾아 이전시켜 중소기업 업종의 연장과
현지 발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둘째 전세계에 구축되어 있는 거점을 지역별로 묶어 각 지역마다 이를
통합관리하는 지역본사를 설치하고 분권화된 독립경영체제로 운영함으로써
지역별로 새로운 상권을 구축하고 연구개발 자원개발 생산등 제품의 생산과
관련된 상류기능(Upstream)및 물류 유통 금융등 제품의 판매 유통과 관련된
하류기능(Downstream)에 이르기까지 관련 사업의 모든 기능의 수직적 통합
으로 상승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셋째 정보 금융 물류등 경영인프라의 구축을 통해 종합상사의 기능을
고도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세계시장의 상품 사업정보를 신속 정확히 입수하고 이를 분석하여
본사를 위시한 전 세계 거점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최근 금융환경의 자율화 개방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여 금융기능을
보다 강화시키고 전문화시켜 궁극적으로 해외 직접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치열한 무역전쟁에서 우리상품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력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종합상사가 보유하고 있는 해외 네트워크 금융기능 각종 기술및 상품
정보등을 통해 중소기업들에 대한 정보제공 운영자금 기술개발 경영컨설팅
및 판로개척을 지원해 줄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해외시장에 대한 동반진출을
보다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