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가에선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한국은행이 "통화"에 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려있는데도 금리는 오르고 원화값이 강세를 지속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리가 오르면 중소기업들이 아우성을 칠 것이므로 한은은 이달중
2천억원이상의 자금을 더 풀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 물가도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은은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주식시장의 동향만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한은이 주식시장만을 쳐다볼수 밖에 없게 된 것은 최근들어 다소 소강상태
를 보이고 있는 주식시장이 활황세로 돌아설 경우 외국인주식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란 우려탓이다.

외국인투자자금이 예상보다 훨씬 더 넘게 들어오면 이는 곧바로 국내
통화량증가로 이어지고, 달러공급확대로 원화환율이 더욱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중의 총통화증가율은 16.7%로 통화증가율 목표치를 지기에는
위험수준이고 대미달러화에 대한 원화값도 6일 7백91원선으로 7백90원대붕괴
를 눈앞에 두고 있다.

외국인 자금유입으로 통화량이 늘어나면 한국은행은 올해 총통화증가율의
목표치(14-17%)를 고수하기 위해 국내부문에 대한 통화를 조여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중금리는 또한차례 요동칠 것이고 은행들의 대출이 사실상
마미되는등 기업들의 연말 자금사정에 적신호가 갈 것이 뻔하다.

한은은 이달중 주식투자를 위한 외국인투자자금이 15억달러이내에서만
들어와 주면 그런대로 총통화목표치범위안에서 통화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난달말부터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11월 29일
1억1천3백만달러, 30일 1억8천6백만달러 유입된데 이어 3일에는 하룻만에
무려 3억3천만달러 들어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등 5일간 7억5천만달러
(약6천억원)가 유입됐다.

물론 이는 외국인들에 대한 종목당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된 1일 매입한
주식의 결제자금이 한꺼번에 몰린게 주요인이다.

그러나 4일 하룻만에도 당초예상(1천-2천만달러)보다 훨씬 많은 3천3백만
달러의 외화자금이 들어오는등 앞으로 어느정도의 자금이 들어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증시관계자는 "12월 주식시장이 어떻게 갈지는 전망하기 힘들지만 증권가
에서는 한차례 상승세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때 외국인들이 다시
한번 대규모의 자금을 들여올지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보여 외국자금이 "환차익"까지도 노릴 수 있다는 점도 외국
자금유입이 예상보다 많을 것이란 전망을 가능케한다.

그러나 12월중 통화관리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많다.

7일부터 중소기업은행의 주식공모자금이 환불된데다 외국인들의 주식자금이
들어오면 증권사등 제2금융권의 자금사정이 좋아지게 된다.

따라서 1금융권자금을 중심으로 산출하는 총통화(M2)에 여유가 생기게
되며 한은도 통화관리를 강화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 2금융권의 자금사정이 좋아지면 이들 기관이 실세금리로 발행되는
통화채를 상당액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통화관리에는 더욱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이런 전망도 외국인 주식자금이 일정선에서 멈춰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은이 연말 통화 금리 환율의 복병으로 주식시장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