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은 한국영화계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올려진 해였다.

젊은감독군의 활약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졌다.

강우석 박광수 여균동 박헌수 장선우 김홍준 장현수등 대부분 30대중반
감독들이 한국영화의 장미빛 미래를 위해 초석을 다진 한해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들은 흥행이나 작품성 모두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올들어 10만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11월말 현재 총8편.

서울에서만 85만명을 끌어모은 "투캅스"를 비롯, "그섬에 가고싶다"
"세상밖으로" "구미호" "태백산맥"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게임의 법칙"
"블루시걸"등이 10만돌파대열에 든 영화들이다.

이가운데 "태백산맥"과 "블루시걸"을 제외한 작품은 모두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결과 93년 "서편제" "그여자 그남자" "가슴달린 남자" "101번째
프로포즈"등 4편에 그쳤던 10만이상흥행작이 두배로 늘어났다.

한국영화 차세대주자들의 활약은 흥행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구태의연한 멜로물이나 로맨틱코미디, 성애영화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영화
의 문법을 한 차원 끌어 올렸다는데서 그 성과는 더욱 빛을 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소재선택에서 벗어나 각종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재로 관객을 맞이한 점.

강우석프로덕션의 "투캅스"는 금기시돼온 경찰관의 비리와 이기적 형태를
코믹터치를 통해 예리하게 꼬집었다.

장선우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가벼운 포르노그래피"를 표방하면서
여과없는 대사, 진솔한 연기와 심리묘사에 성공, 40만명이상을 동원하고
있다.

컴퓨터그래픽등 첨단기술을 도입한 영화들도 주목을 끌었다.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신씨네의 "구미호"
와 국내최초의 성인만화영화로 관심을 모은 "블루시걸"(용성시네콤)이
개척자를 자처한 작품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가 의욕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용공시비를 불러일으킨 "태백산맥"도 오랫동안 벽속에 갇혀있던 이념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박수를 받았다.

젊은감독들의 선전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됐다.

장선우감독이 제4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화엄경"으로 본상에 준하는
특별상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으며, 엄종선감독의 "만무방"은 미국
마이애미포트 로더데일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수상이라는 낭보를 전했다.

"장미빛인생"의 주연배우 최명길씨가 프랑스 낭트3대륙영화제 최우수여우상
을 거머쥔 것도 젊은 김홍준감독의 연출력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영화 소개지역이 오세아니아, 유럽, 독어권으로 확산된 것도 94년
영화계가 거둔 주요성과로 꼽힌다.

외화의 프린트벌수 제한폐지에 따라 복합개봉관이 확산되고 여러극장에서
동시개봉되는 영화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주목할만한 사항.

이같은 하드웨어적 측면의 변화는 미국직배사만 살찌운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극장 흥행구조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공윤의 잦은 가위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모전, 국제영화제에서
망신을 당한 원인이 된 후반기술작업등은 우리영화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시정 또는 보완돼야 할 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