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학제처럼 말많은 주제도 드문데 그중에서 대학운영의 단계별
자율화일정이 교육부에서 나와 모처럼 신선감을 준다.

언제까지 정부가 덩치 큰 대학들을 끌어안고 속속들이 간섭을 할수 없다는
현실은 새삼 논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근래의 본격적인 자율화추세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에서
그것을 두려워 하는 이면에는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자율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넓어지는 자율의 폭에 비례하여 능히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리라고
기대를 걸수 있는 곳은 어디보다 대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화선언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육의 국제화 세계화 추세는 빠르게 진행
되고 있다.

그것은 학제나 학사행정 측면에 국한된 과제가 아니라 대학의 연구 교육
내용이 고도의 속도감과 세계적 보편성을 더욱 요구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의 본래적 존재이유가 진리의 탐구라고 인정한다면 그 선행요건이
자유여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동안 한국 대학운영의 관의존 관행은 한마디로 변태였다.

물론 그것이 대학만의 책임이라기 보다 관존민비 가치관에서 대학을 출세
양명의 필수 과정으로만 보아온 학부모, 사회전체의 의식에 연유한다.

그러면 이제 그것이 시정될 것인가.

당위성을 말한다면 그런 대학관이 고쳐지지 않고는 이 사회의 선진화는
전혀 기대할수 없다.

이번 교육부 계획은 대학정원을 3년차로 98년도에 완전 자율화하는 골간
아래 교수 시설 학기 학점제등 부수적 운영기준의 대학일임을 약속하고
있다.

하도 많이 약속과 후퇴가 반복돼 왔던만큼 이번 계획의 실현도 100%
밑겨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대학운영 최대의 관심사가 입시경쟁에 관련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교육부 계획에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

인구통계적 추세로 대입적령인구는 감소일로가 분명하므로 입시경쟁이
완화되는 대신 대학은 량아닌 질적 제고로 선회하지 않을수 없는 시점에
온것이다.

더구나 외국의 유수대학 마저 학생확보 유인을 강화해 가는 추세에서
한국대학들이 맞을 미래는 무엇보다 자생력을 요구한다.

정부 의존에서 벗어나 재정자립 방안을 비롯하여 대학의 사회적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 홀로서기에 실패하면 그 대학은 멀지 않아 도태될 것이다.

말이 대학이지, 국제경쟁에서 이런 엉성한 구석이 또 있나 싶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러 원인 가운데 정당성없는 정권에의 반항을 더큰 사명처럼 여겨온
오랜 인식이 아직도 새 대학상 구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교수가 중심에 서서 대학 스스로 모든 문제에 달려들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