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린 외무통일위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가입비준동의안과 함께
민주당이 발의한 "WTO이행에 관한 특별법"을 상정, 여야간 이행법에 대한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이로써 WTO가입비준안의 처리는 비준동의냐 아니냐는 기본적인 문제와
더불어 이행법을 마련하느냐 마느냐 하는 또다른 문제로 발전하게 됐다.

그간 이행법 마련에 소극적이던 민자당이 일단 "검토할수 있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임에 따라 협상 추이에 따라 WTO가입비준동의안은 여야 합의
통과할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의 WTO이행법이 여야간 원만한 합의를 통해 국회를 통과하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여야가 입장이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WTO가입비준동의 조건으로 내세운 이 이행법안은 "WTO가 국내
경제주권을 침해할수 없으며 WTO협정보다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정부는 수출보조금등 제정지원을 받은 외국상품을 수입할 경우 상응
하는 관세를 부과토록 했다.

특히 남북간 거래를 민족내부거래로 인정한다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러나 이들 주요 조항에 위헌적인 요소가 많아 원안대로
통과시킬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헌법은 공포된 조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
WTO협정보다 국내법이 우선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경제주권을 보장한다는 조항도 우리에게 어떠한 법률적 권리를 부여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선언적 조항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당은 남북거래의 민족내부거래 선언에 대해서도 "오히려 WTO내 분쟁의
소지일 남길뿐 실익이 없다"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관행적으로 접근
해야 한다"고 주장,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외무부도 9일 국회에 제출한 이행법에 관한 검토에서 민자당과 동일한
입장을 표시했다.

이같은 주요 조항에 대해 민자당이 이견을 보임에 따라 법안의 수정 없이는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들 핵심 조항은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소위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이같은 분명한 이견이 있음에도 이행법에 대한 심사에 들어간
이유는 WTO여야합의 통과를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는게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당은 야당의 요구를 일단 들어주어 야당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야당은 대세가 WTO가입으로 기울어지자 특별법 제정을 마련했다는 선에서
동의안에 합의해 주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이다.

이는 민자당이 이행법을 법안형태가 아닌 "결의문"형식으로 하자고 주장한
것에서 알수 있다.

또한 민주당이 "미국처럼 WTO협정을 조약형태가 아닌 이행법형태로 비준
하자"는 기존의 입장에서 "WTO는 조약형태로 가입하되 이행법은 별도의
후속법안으로 마련할수 있다"고 일보 후퇴한 것도 이를 말해 준다.

민자당의 주장대로 결의문 형태로 통과시키던, 민주당의 안대로 특별법
형태로 입법화되던 이행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질수 없는 "사법"이 될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국내 법률전문가들은 8일 열린 WTO관련 공청회에서 "국제법 체계상 WTO에
가입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국내법이 WTO상의 의무사항을 피할수 없을것"
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금 이행법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간 줄다리기는 서로의
명분을 얼마나 지켜가면서 WTO가입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느냐의 싸움으로
해석된다.

외무통일위 소속의 한 민자당의원은 "이 법안의 심의를 병행하되 당초
예정대로 WTO동의안을 다음주 초쯤 외무통일위의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회부, 이번 회기내 처리하게 될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야간 이행법 마련 논의가 WTO비준동의안 처리 여부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