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짜리 소학생 나를 그의 있기 싫은 우동집에서 고향처럼 끌어안고
입맞추던 소녀도 이젠 죽어 흩어져버렸다면,그 뉠니리와 가느다란
눈 속의 눈동자,그런 것들에 있는 약간의 은빛과그 고향 흙빛의
날개쯤 해가지고 내 일생에 한번쯤 꼭 맞는 통로를 거쳐 내 창으로
맞는 시간에 나타남직도 하지 않는가" 미당의 첫키스에 대한 추억이다.

미당 서정주(80)시인이 자신의 질마재 고향 어린시절 얘기부터
50년대명동국밥집 "명천옥"에서 문인들과 어울리던 시절까지 지난삶을
돌아본 자서전을 펴냈다(전2권 민음사간). 자서전의 매력은 널리
알려진 공과 잘난 대목보다는 숨겨져있던 잘못한 일들과 못난 점을
엿보는데 있다.

미당의 자서전은 노대시인의 자서전답게 지난날 실수하고 잘못한
일,자신의 삶과 문학에 영향을 미친 사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어린시절 저지른 잘못과 처음 성에 눈뜰때의 비밀스런 사항들,문학을
하게된 동기,친일행위에 대한 고백,이승만대통령과의 인연등이 눈길을
끄는 부분들. 국민학교 1학년때 줄곧 1등을 하다가 2학년때 6등을
한뒤 아버지의 낙망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 6자를 2자로 고친뒤
내놓았다는 고백에서는 소년다운 깜찍함을 엿볼수 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12살때 집에서 심부름하던 열여덟살난
종놈의 꾐에 빠져 수음을 시작했다는 자백 또한 누군가의 비밀을
훔쳐보는 즐거움을 갖게 한다.

"수음을 누습하는 동안 새애한 맛을 내 몸뚱이속에서 뽑아내기는
내었다.

나는 그 한구석에서 내 고독을 물리치는 이 알몸의 조마로운 싸움에
골몰하곤 했다"(책1권 P.186~187) 미당은 자신이 친일파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중앙고보 재학시절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한때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회주의자였다고 털어놨다.

그러다가 사회주의를 버리고 문학을 택하게된 결정적인 동기는
러시아작가 투르게네프와 고리키때문이었다고. 소련의 최고작가
고리키의 단편소설에 실망하고 투르게네프의 간절한 애정을 그린
장편소설 "그 전날밤"에 반해 고리키를 포기하고 투르게네프를 선택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버리고 순수문학을 택했다는 고백이다.

미당은 이어 "창피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아래 친일행위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44년가을부터 45년봄까지 친일적인 시를 쓴 것이 사실이라며
2차대전 당시 싱가폴이 일본군에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연맹군이 승리하리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자백이다.

미당은 "지난날을 회고하고 재음미하고 싶어 틈날때 조금씩 쓴
산문들이 자서전으로 엮어졌다"며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은 것은
당시의 내심정을 밝히고 새 인생의 행로를 밟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