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조선국에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는 조선국측에서는
손을 못 대도록 규정하고,자기네 국법에 따라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니,장차
일본의 어떤 무리가 건너와서 어떤 사건을 저질러도 조선국측에서는
단죄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치외법권의 설정은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뒤 실제로 조선국을 식민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악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국의 수뇌부에서는 처음부터 조선국을 장차 자기네
식민지로 만들려는 용의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 수호조약은 일본국의 위정자들이 자기네 머리로 짜낸 독창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서양 여러 나라로부터 배운 수법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 그런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이웃 조선국에 대하여 그 수법을
써먹는 것이었다.

자기네는 서양 여러 나라와 맺은 조약들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면서 이웃 조선국에 대하여는 한술
더 뜬 그런 내용의 조약을 서슴없이 강요했던 것이다.

수호조약의 조인식을 마치자,외교 의례에 의해서 양국 대표 사이에
기념품의 교환이 있었고,그자리에서 곧 축하연이 베풀어졌다.

축하연이라고 하지만,즐거운 것은 구로다를 비롯한 일본측 대표들이렀을
뿐,조선국측 참석자들은 이것이 과연 축하해야 할 일인지,착잡하고
얼떨떨한 심정들이었다.

강요에 못이겨 마지못해 체결한 수호조약이니,다시 말하면 타의에
의해서 개국이 된 셈이니,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한 다음,구로다는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수호조약의 체결로 단절됐던 양국위 국교가 재개된 데 대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는 인사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였다.

"앞으로 조약의 실천을 위한 세목(세목) 협정이 또 이루어져야
하지만,그 이전에 일차 귀국의 사신이 우리 일본을 방문해서 물정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 양국간의 이해와 우의를 증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만약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 측에서 화륜선(화륜선)을
제공해 드리겠소" 그 제의에 대하여 신헌은 "그일의 결정 역시 내가
이자리에서 할 수는 없으니,조정에 상신해 보지요.

조약이 체결된 마당에 우리 조정에서 설마 거절이야 하겠소" 이렇게
대답하며 조용히 웃었다.

그의 허옇고 너물너물한 수염이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해 보이기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