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사람들이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브라질의 경우는 다르다.

현금을 소지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브라질 경제에 대해 사람들이
신뢰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그 배경은 3,000%가까이에 이르던 인플레가 지난 7월1일 단행된
레알플랜으로 1~4%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고인플레하에서 모든 지불을 수표로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화폐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탄탄한 경제구조를 갖고있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최근의 수치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87년부터 91년까지 연평균 인플레가 1,034%
(세계은행자료)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새로운 통화를 도입한 레알플랜은 시행초기단계에서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사람들은 물건의 값에 대한 개념을 비로소 가지기
시작했고 낮은 인플레하에서 사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내년 1월1일 출범하는 페르난도 헨리케 카르도소대통령정부의 재무장관
으로 유력시되는 페드로 말란 브라질 중앙은행총재는 레알플랜의 성공을
이같이 강조하면서 잃어버린 시대( lost decade )인 80년대의 경제불황을
벗어나 성장의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레알플랜은 시행되기전에는 어떠한 전문가도 성공을 믿지 못했다.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마치 마약중독자가
손을 끊을수 없듯이 남미에서는 실패로 끝난 경제개혁조치가 끊임없이
나왔기때문에 어떤형태의 경제개혁조치라도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브라질의 성공으로 남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화폐개혁이 성공함으로써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무역수지흑자(93년의 경우 130억달러)를 자랑하며 1억6,000만명
의 인구를 갖고있는 거대한 시장으로서의 브라질의 잠재력이 새삼스럽게
관심을 끌고있다.

종전에 운용되던 공정환율,관광환율및 시장환율(암달러)등 3가지 환율을
단일화시키고 실질가치지수( URV:Unit of real value )를 도입,4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7월1일 새로운 화폐인 레알을 도입한 레알플랜은 과연
어떤 배경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인가.

경제기획장관을 지낸 SRL은행장인 조앙 사야드는 최근 2~3년간 무역수지
흑자로 430억달러에 이르게된 외환보유고와 91년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외국자본등 조건이 좋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86년에 레알플랜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크루이자도 플랜이
시행됐었지만 브라질경제의 걸림돌인 인덱세이션을 단번에 파괴하기
위해 물가의 동결을 선언한 것이 오히려 실패의 원인이었다.

이번에는 4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인덱세이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인덱세이션이란 금리 환율 임금및 물가등의 각종 지수에 의거해 금리
환율및 물가는 매일,임금은 매 3개월 또는 1년에 두번씩 조정해오던
브라질 특유의 정책으로 고인플레하에서 시행되어 오던 것이다.

레알플랜에서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고정된 URV지수로 정하고
이지수와 당시 화폐인 크루제이로 레알간의 환율은 매일 변동시켜
1URV의 가치를 달러 공정환율과 일치시킴으로써 사실상 화폐를 달러화
시켰다.

동시에 환율의 인덱세이션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수입대체산업 육성정책에 의해 보호받아왔던 브라질 국내기업들이
수입관세인하라는 새로운 개방정책으로 비로소 생산성향상을 생각하게
된 것도 브라질 경제의 앞날을 밝게 보게하고있다.

윈스턴 프리치 브라질상공차관은 평균수입관세가 85년의 80%에서 올해
10월현재 14%수준으로 내려왔고 생산성은 지난 3년간 36%가 향상됐다면서
93년의 경우 국민총생산(GNP)이 4.9%증가했지만 산업부문GNP가 9%나
증가했다고 강조한다.

프리치차관은 "2년전에 ISO9000을 받은 업체가 80여개에 불과했으나
10월현재 465업체에 이르고 있는 점이 브라질 업체들의 생산성제고노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있다"고 설명한다.

브라질국민들에게 비로소 안정된 물가라는 개념을 심어준 레알플랜의
성공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우선은 아직도 인플레의 안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카르도소의 선거 승리를 위해 그를 지지하는 기업들이 공산품
가격인상을 자제해왔고 연말에는 보너스가 지급되는등 인플레가 재연될
소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뇌리에서는 지난 몇년간 거듭돼온 여러가지의 안정화정책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고있는 셈이다.

레알플랜의 시행자인 말란중앙은행장도 "개혁의 진정한 성공에는 수개월
또는 수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현정부의 개혁정책에 신뢰감을 갖게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는 레알플랜을 주도한 카르도소의원의 대통령선거
승리로 입증됐다"고 강조한다.

사실 카르도소정권의 앞날에는 재정적자문제가 놓여있다.

레알플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긴급사회복지기금 160억달러를 조성,
이중 93억달러를 재정적자보전에 사용하고 인건비절감 기부금삭감등으로
올해 균형예산을 꾸려나갈수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긴급사회복지기금은 2년시한부이며 기존 사회보장관련지출등 의무적인
정부의 재정지출을 규정한 헌법을 개정해야만한다.

세제개혁을 통해 5,000만명의 경제활동인구중 700만명에 불과한
담세계층도 늘려야 한다.

고질화된 정치인 관료집단의 부정부패및 정경유착고리 단절,민영화의
가속화등 산적한 문제는 여전히 많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대 이후 처음으로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정치지도자들과 정책관료의 존재등은 브라질의 경제가 이제 성장의
기회를 맞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 브라질리아=김형수국제1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