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산업] 80년대초 첫 테이프..고유브랜드 수출 비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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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브랜드수출의 성공여부는 브랜드마케팅전략의 적절한 구사와 비례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내 신발업체들의 고유브랜드수출은 사실상 닻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올바른 대응전략과 행동이 뒤따르지 못했다.
80년대말까지 전세계에 공급되는 신발의 최대 생산기지였던 우리나라지만
아직 세계적인 브랜드로 명함을 내밀만한 것이 없다는 뼈저린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국제상사 화승 삼화 태화등 종업원 1만명이상의 굴지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었으나 결국 생산에서 손을 떼고 사업다각화란 이름으로 말을 갈아탔다.
공중분해된 회사들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국내 신발업계의 위상약화는 고유브랜드수출을 성공시키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바이어들의 이탈이 곧 타율적인 변화를 강요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수출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면도 있으나
고유브랜드수출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도 "해법"을 제대로 찾지못한 것이다.
국내업체들의 고유브랜드 "도전사"는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싹이 튼다.
당시 세계 최대공장을 갖고 있는등 세계신발시장에서 부러울게 없었던
국제상사가 테이프를 끊었다.
당시는 아직 나이키 리복등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때.
군소바이어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던 중이었다.
오늘의 신발시장판도를 볼때 적절한 때에 고유브랜드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때 국제는 프로스펙스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미국 보스톤에 있는 뉴스펙스사를 인수, 프로스펙스로 개명한뒤 고유
브랜드수출의 길을 열었다.
뉴스펙스는 당시 미국시장에서 13위정도 회사였다.
국제로선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당시 국제의 신발업계 위상으로 보면 당연한 수순을 밟아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뉴스펙스를 인수했으나 이회사의 전통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뉴스펙스의 기업문화나 미국식 경영매커니즘을 소화하지 못했다.
한국본사에서 한국식에 의한 통제와 의사결정과정을 거침으로써 현지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시장 속성에 걸맞게 수요예측을 통한 적절한 광고판촉에 나서지
못했다.
그럴듯한 회사를 현지거점으로 마련해 놓고도 "보따리 장수식"영업을
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국제상사는 고유브랜드수출이 벽에 부딪치자 컨설팅을 통한 문제점 타결에
나섰다.
그러나 85년2월 공교롭게도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프로스펙스브랜드는
또다른 환경에 직면한다.
국제는 당시 세계 60여국에 지사가 있었던 종합무역상사였다.
상사기능이 떨어져 나간것도 시장접근을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
국제는 86년 프랑스 사텍사와 총판매권자(DISTRIBUTOR)계약을 체결하면서
고유브랜드수출의 새 국면을 맞았다.
이회사는 현재 44개국에 총판매권자를 두면서 연간 4천만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들어선 유형의 상품판매에서 기술력 브랜드력등 무형의 상품을 파는
이른바 브랜드라이선싱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마케팅전략이 바뀌고 있다.
80년대중반 나이키와 결별한뒤 르까프브랜드를 개발했던 화승은 미국 LA에
전시판매장을 내 르까프브랜드수출을 추진했었다.
이른바 "안테나숍"을 냈다.
그러나 미국 신발시장의 다양성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 대형 신발생산업체들의 고유브랜드 도전사는 결국 현지화와 대량
자금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가격 정책과 차별화된 아이템선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때 신발수출 경쟁에 나섰던 효성물산 삼성물산 선경등 종합상사들도
현지브랜드를 인수하거나 고유브랜드를 개발, 브랜드수출을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중소신발생산업체들도 나름대로 브랜드수출을 추진했으나 미국시장의
볼륨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한 자금력으로 현상유지를 하는데 그쳤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은 수출업체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고유브랜드전략을
세우고 있다.
국제상사 화승등 신발전문업체들은 아시안게임등 국제스포츠이벤트에
스폰서를 하거나 출전선수에게 자사제품을 착용시키는등 서구식 광고판촉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액티브브랜드의 코오롱상사도 해외광고용 CF를 제작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
(R&D)투자로 제품의 특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잰서스"브랜드의 진도패션은 미국프로농구선수와 전속광고계약을 체결
하는등 현지법인인 JF월드사를 통한 현지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트바스 학산등 중소업체들도 마케팅기능을 대폭 강화, 브랜드이미지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 브랜드수출업체들은 또한 다양한 가격의 제품공급을 위해 각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는등 다국적 마케팅 전략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정확한 시장분석을 통한 적절한 마케팅전략수립이 없다면 고유브랜드수출은
성공할수 없다는 자각에서 수출시장에 다시금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 남궁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
이런 의미에서 국내 신발업체들의 고유브랜드수출은 사실상 닻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올바른 대응전략과 행동이 뒤따르지 못했다.
80년대말까지 전세계에 공급되는 신발의 최대 생산기지였던 우리나라지만
아직 세계적인 브랜드로 명함을 내밀만한 것이 없다는 뼈저린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국제상사 화승 삼화 태화등 종업원 1만명이상의 굴지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었으나 결국 생산에서 손을 떼고 사업다각화란 이름으로 말을 갈아탔다.
공중분해된 회사들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국내 신발업계의 위상약화는 고유브랜드수출을 성공시키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바이어들의 이탈이 곧 타율적인 변화를 강요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수출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면도 있으나
고유브랜드수출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도 "해법"을 제대로 찾지못한 것이다.
국내업체들의 고유브랜드 "도전사"는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싹이 튼다.
당시 세계 최대공장을 갖고 있는등 세계신발시장에서 부러울게 없었던
국제상사가 테이프를 끊었다.
당시는 아직 나이키 리복등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때.
군소바이어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던 중이었다.
오늘의 신발시장판도를 볼때 적절한 때에 고유브랜드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때 국제는 프로스펙스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미국 보스톤에 있는 뉴스펙스사를 인수, 프로스펙스로 개명한뒤 고유
브랜드수출의 길을 열었다.
뉴스펙스는 당시 미국시장에서 13위정도 회사였다.
국제로선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당시 국제의 신발업계 위상으로 보면 당연한 수순을 밟아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뉴스펙스를 인수했으나 이회사의 전통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뉴스펙스의 기업문화나 미국식 경영매커니즘을 소화하지 못했다.
한국본사에서 한국식에 의한 통제와 의사결정과정을 거침으로써 현지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시장 속성에 걸맞게 수요예측을 통한 적절한 광고판촉에 나서지
못했다.
그럴듯한 회사를 현지거점으로 마련해 놓고도 "보따리 장수식"영업을
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국제상사는 고유브랜드수출이 벽에 부딪치자 컨설팅을 통한 문제점 타결에
나섰다.
그러나 85년2월 공교롭게도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프로스펙스브랜드는
또다른 환경에 직면한다.
국제는 당시 세계 60여국에 지사가 있었던 종합무역상사였다.
상사기능이 떨어져 나간것도 시장접근을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
국제는 86년 프랑스 사텍사와 총판매권자(DISTRIBUTOR)계약을 체결하면서
고유브랜드수출의 새 국면을 맞았다.
이회사는 현재 44개국에 총판매권자를 두면서 연간 4천만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들어선 유형의 상품판매에서 기술력 브랜드력등 무형의 상품을 파는
이른바 브랜드라이선싱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마케팅전략이 바뀌고 있다.
80년대중반 나이키와 결별한뒤 르까프브랜드를 개발했던 화승은 미국 LA에
전시판매장을 내 르까프브랜드수출을 추진했었다.
이른바 "안테나숍"을 냈다.
그러나 미국 신발시장의 다양성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 대형 신발생산업체들의 고유브랜드 도전사는 결국 현지화와 대량
자금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가격 정책과 차별화된 아이템선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때 신발수출 경쟁에 나섰던 효성물산 삼성물산 선경등 종합상사들도
현지브랜드를 인수하거나 고유브랜드를 개발, 브랜드수출을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중소신발생산업체들도 나름대로 브랜드수출을 추진했으나 미국시장의
볼륨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한 자금력으로 현상유지를 하는데 그쳤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은 수출업체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고유브랜드전략을
세우고 있다.
국제상사 화승등 신발전문업체들은 아시안게임등 국제스포츠이벤트에
스폰서를 하거나 출전선수에게 자사제품을 착용시키는등 서구식 광고판촉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액티브브랜드의 코오롱상사도 해외광고용 CF를 제작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
(R&D)투자로 제품의 특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잰서스"브랜드의 진도패션은 미국프로농구선수와 전속광고계약을 체결
하는등 현지법인인 JF월드사를 통한 현지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트바스 학산등 중소업체들도 마케팅기능을 대폭 강화, 브랜드이미지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 브랜드수출업체들은 또한 다양한 가격의 제품공급을 위해 각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는등 다국적 마케팅 전략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정확한 시장분석을 통한 적절한 마케팅전략수립이 없다면 고유브랜드수출은
성공할수 없다는 자각에서 수출시장에 다시금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 남궁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