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형 < 주일대사관 참사관 >

김영삼정부의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등장하고 있는 세계화란 "세계속에서
국경을 넘어선 국익의 추구"라고 정의할수 있다.

이러한 정치이념을 외교이념에 적용하여 보면 "외교란 국익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간의 대화와 교섭"이라고 할수 있다.

일찍이 영국의 정치가 파마스톤은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오직 있다면 영원한 국익만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국익은 외교이념의 중심 개념이다.

국가간의 관계에는 로맨티시즘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비정한 리얼리즘의
법칙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국제정치는 국가 에고이즘이 격돌하는 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수 있다.

이와같은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국내
정치가들도 해외에서는 흔히 볼수 있다.

한편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는 어떠한 국가도 자국의 에고이즘에 따라
공공연히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할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온갖 미덕은 위장된 악덕이다"는 명언이 국제사회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정의라든가 인권이라는 미덕의 언어에는 국익을 추구하려는 악덕이 위장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합의한 "북.미간 핵문제"
에도 나타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미국 북한 한국 중국은 각각의 국익을 계산하고, 각국은
"현재와 미래의 국익"이라는 밀교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한반도의 평화"라는 현교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오늘날의 국제상황을 19세기말의 상황과 유사한 것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등 4강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19세기말에는 한국정부의 대응이 잘못되어, 결국에는 국권마저 상실했으나,
20세기말의 오늘에는 한국정부의 전략적 대응에 따라서는 금세기내에 "남북
통일"이라는 기회를 가져다줄수도 있다.

이러한 기회를 살릴수 있느냐의 여부는 무엇보다도 최고지도자의 정치철학
이 중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격언에도 "시대는 바다(해)이고, 국가는 배(선)이고, 국민은 바람
(풍)이고, 정부는 돛(범)이다"는 말이 있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시대의 흐름"(파도)속에서, 군함은 아니고 상선에
비유되는 "한국호"의 선장은 바람(국민)과 돛(정부)를 잘 이용하여 일등으로
목적지(국가이익)에 도달할수 있다는 비전(정치철학)을 제시해야 한다.

남북통일의 전략으로서는 1880년 당시 도쿄에 주재한 어느 외교관(중국
대사관 황준헌 참찬)의 "조선책략"(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으로서 조선으로 하여금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정책을 권유한 내용)을
거울삼아 현대판 "조선책략"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최고지도자의 정치철학인 세계화를 바탕으로 전략적 사고에 따른 외교전략
이 필요하다.

첫째 국제사회의 탈냉전 구조와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의 상황을 구별
대응해야 한다.

외교관은 국제정치학자와 달리 이상주의자는 아니고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미.일.러.중등 4강 외교에서는 탈냉전 구조에
맞추어 협상과 타협을 통한 국익의 극대화를 추진하되 대북한 관계에서는
김일성사망후 한반도에서도 냉전구조의 "종말의 시작"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오늘의 국익"에따라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추진하지 않을수
없다고 본다.

둘째 한반도주변 4강에 대해 국가별 우선순위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우선 <>한.미안보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동맹의 관계"
(맹미),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의 "간접적인 동맹
(우호)의 관계"(우일) <>미국과 일본과 함께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볼수있는 러시아와의 "정치적 우호관계"(정러) <>미국과 일본과
함께, 우리의 국익(경제적 이익)이 많은 중국과의 "경제적 우호관계"(경중)
를 기준으로 외교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셋째 4강외교와 남북외교의 우선순위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국가목표의 우선순위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부득이 남북외교보다 4강외교에 중점을 두어야 하나 진정한 남북대화가
시작되는 장래에는 4강외교보다 남북외교에도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본다.

대북 정책의 현교전략은 "평화공존"이고, 밀교전략은 김일성사후 북한내
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에 냉엄하게 준비하여야 하는 "유비무환"이다.

4강 외교의 현교전략은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정치문제이고 밀교전략은
경제적이익을 우선하는 경제문제여야 한다.

그렇다고 현교와 밀교는 별도의 차원이 아니고 양자는 동일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인지해야 한다.

넷째 국익중에서 안보상의 이익보다 경제상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탈냉전 시대에서는 안보상의 이익보다 경제상의
이익을 우선하여야 한다는 것은 외교의 공리이기도 하다.

경제적 이익은 후진국보다 선진국에 더욱 많은 점을 고려, OECD가입,
WTO체제에의 적극 참여등 우리 스스로의 개방정책을 통하여 탈후입선의
이념을 강력히 추구하는 것이 세계화의 길이라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