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닝이나 공인들의 수작인 모양인데, 그 범인을 잡아내어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잇달아 그런 일이 일어날테니까요"

"한밤중에 감쪽같이 붙이고 사라졌으니, 어떤 놈이 범인인지 잡아내기가
힘들것 같소. 어쩌면 농민들의 짓인지도 몰라요"

"농민들의 짓이라면 더욱 큰일이에요"

이번에는 포대학교의 교장인 다무라가 오야마 지사에게 물었다.

"그 벽보가 아직 붙어있진 않겠죠?"

"물론이죠. 발견 즉시 떼어내 버렸다는 보고였소"

"그렇다면 없던 일로 덮어 버리는게 어떨까요?"

그 말에 사이고가 눈을 떴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자 벳푸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약간 열기를 띠어 말했다.

"없던 일로 덮어 버리다니 말이 되오? 어떻게든지 범인들을 색출해 내어
극형에 처해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요. 덮어버리면 다시 벽보가
나붙을거 아니겠소. 아마 오늘밤에 또 붙일 거요. 만약 그게 농민들의
짓이라면 이건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오. 유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겁니다"

그 무렵 여러 지방에서 신정부의 농지 조세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농민들이
곧잘 폭동을 일으켰다.

그것을 농민 "잇기"(일규)라고 했는데, 뜻을 하나로 모아 궐기한다는
뜻이었다.

폐도령을 지지하는 벽보를 붙인게 만약 농민들이라면 학생들과 사족들의
반대 시위가 아니꼬와서 그랬을게 틀림없으니, 자칫하면 사족과 농민의
대결로 발전할지도 알수 없었다.

가고시마의 농민들은 정부의 농지 조세정책보다 폐도령 때문에 오히려
정부를 지지하여 낫과 괭이를 들고 사족들을 향해 일어설지도 모르는 판국
이었다.

"없던 일로 덮어버린다는 말은 그 사실이 널리 퍼지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지, 결코 묵인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은밀히 감시를 해서 범인을
잡더라도 비밀리에 처단해야 돼요. 공개적으로 하면 오히려 농민들을
자극하게 된다 그거지요"

다무라의 그 말에 비로소 사이고가 입을 열었다.

"옳은 말이오. 그렇게 하는게 좋겠소. 그리고 앞으로는 시위도 일절
금하도록 하오. 이제 모든 면에서 바짝 조이는 거요"

사이고의 그 말은 곧 강압통치를 실시하라는 지시였다.

가고시마현, 다시 말하면 작은 왕국은 그날부터 당장 계엄사태와 같은
삼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시위는 고사하고, 통행도 자유롭게 할수가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