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은 "동양의 복활절"이다.

하지로부터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 밤은 동지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가
다음달부터는 짧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복활하는 날로 생각해
축제를 벌였다.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신정)로 삼았던 것이나 주역에서 복괘가 자월
(11월)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태양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다.

이 유습은 오랫동안 남아 우리나라에서도 동지를 "작은 설"(아세)이라
불렀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이야기는 동짓날을
정월1일로 삼았던 때의 오랜 유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각방과 장독
헛간등 집안의 여러곳에 떠 놓았다가 먹었다.

대문에도 뿌렸다.

팥죽은 색이 붉은 양색이므로 역신등의 음귀를 쫓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은 축귀주술행위였다.

해마다 동짓날이면 관상감에서는 이듬해 책력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렸다.

임금은 그것에 "동문지택"라는 어새를 찍어 모든 관원들에게 차등있게
나누어 주었다.

누런색깔의 표지(황장력)가상품이었고 그밖에도 청장력 백력 중력 월력
상력등 갖가지였다.

서울에서는 단오날에 부채를 상전이 아전에게 나누어 주고 동짓날에는
아전이 상전에게 달력을 만들어 올렸는데 이것을 "하선동력"이라고 했다.

궁중의 내의원에서는 쇠가죽에 후추 설탕 꿀을 넣어 삶은 "전약"을
임금에게 올려 몸을 따뜻하게 보하게 했고 각 관청에서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었다.

민간에서는 화로가에 둘러앉아 쇠고기를 번철에 구어먹과 장탕을 끓여
먹으며 술을 마시는 "난로회"라는 모임이 성행했다.

또 이무렵 제주도에서 특산품인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면 임금은 성균관
에 유생들을 보아 귤을 나누어주고 시제를 내려 시험을 치게 했는데
이것을 "황감제"라 불렀다.

"박쥐가 울지않고 범이 교미를 시작하며 여주의 싻이 돋아나고 지렁이가
정을 나누고 고라니의 뿔이 떨어지고 샘물이 어는 때"가 동지라고 했다.

음의 기운에 잠겨 있던 만물에 양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정중동"의
절후가 동짓날이다.

오늘은 동짓날이다.

들뜬 기분으로 한 해를 보낼것이 아니라 우리 선인들처럼 작은 선물
이라도 서로 나누고 "난로회"라도 열며 새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았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