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자금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은행들이 지급준비금부족을 메우기 위해 치열한 자금확보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상반기 지준마감일인 22일을 앞두고 하루짜리 콜금리가 법정
상한선인 연 25%까지 치솟았다.

또한 은행들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를
올려 발행함에 따라 CD금리가 한때 연 16.5%까지 오르기도 했다.

똑같은 소동이 지난 8월초에도 있었다.

그때도 은행들이 지준부족을 막지 못해 콜금리가 법정 상한선까지 올랐고
한은은 환매채(RP)로 묶여 있던 돈의 일부를 현금상환해 주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고 있는가.

우선은 일선 금융기관들의 자금운용 능력부족에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다.

금리자유화 이후 돈이 수익성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몰림에 따라 은행의
가계자금대출과 유가증권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한국통신 주식입찰을 계기로 시중에 풀린 돈이 금융기관에 제대로
환수되지 않음에 따라 연간 총통화증가율이 17.5%에 육박하고 있다.

다음으로 통화금융당국의 정책조정노력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할수 있다.

한은은 통화관리에, 그리고 재무부는 금리안정에만 매달리고 상호간의
정책조율이 부족했다.

한통주식입찰의 과열로 통화관리에 구멍이 났는데도 정기국회와 정부조직
개편파동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맥을 놓고 있다가 자금수요가 많은 연말을
맞아 뒤늦게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통화관리제도가 개방경제시대에
걸맞지 않게 낡아 빠졌다는데 있다.

중앙은행인 한은은 과다한 정책금융수요 때문에 본원통화공급에 대한
조절능력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간접적인 통화관리수단인 지급준비율조정, 공개시장조작, 재할인율
조정 등도 채권시장의 발달 부진, 비탄력적인 정책금융금리 등의 이유로
거의 효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준비율만 해도 불필요하게 높은 감이 없지 않으며 콜자금을 끌어들여
적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숫자놀음은 지준준수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게다가 설사 지준부족을 메우지 못해도 과태료를 물거나 유동성조절자금
(B2)을 지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니 이런 금융관행과
제도로 어떻게 눈앞에 닥친 금융시장개방에 대비할수 있겠는가.

물론 최근 총액대출한도제의 도입, 정책금융금리의 단계적인 현실화등
관계당국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발맞춰 과감한 개혁조치가 없을때 은행의
지준부족소동 같은 불필요한 충격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