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독립"문제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
에서 "정치적 럭비공"으로 변모된 느낌이다.

민주당에선 정부조직개편안 대부분을 받아들이는 대신 한은독립을 요구
하고 있다.

조직개편으로 인한 행정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
민자당과 정부도 문제의 핵심을 다시 살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쪽으로 자세를 바꿔가고 있는 듯하다.

한은 직원들의 기대도 여느때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분위기가 과거 한은독립에 관한 논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회기내에 한국은행법까지 손대기는 물리적
으로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번 회기에서는 그저 "한은을 독립시키겠다"는 선언적인 수준에서
만족하고 구체적인 내용이나 추진방법등은 추후로 미룰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은은 언제쯤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독립될수 있을까.

한은독립이라는 단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독립"이라는 표현에 자체에도 의문들 던지는 사람들도 없지않다.

"한은독립"은 매우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뜻이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에서 "정부안에서의 중립성 확보"등 그 내용은
헤아릴수 없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정부조직내에서의 조직상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한하더라도 구체적인
독립의 내용은 상당히 달라질수 있다.

그러나 재무부과 한은간에 갈등을 빚어온 내용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수
있다.

첫째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을 누가 맡느냐는 점이다.

현재 금통위의장은 재무부장관이 겸임하고 있으나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는게 한은의 설명이다.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한은독립도 현재로선 이를 의미한다.

금통위의장을 한은총재에게 넘겨줘 독립성을 보장하돼 재정경제원차관이
금통위의 부의장을 맡아 한은의 독주를 견제토록 한다는 방안이다.

금통위의장을 한은총재가 맡는 것과 한은독립을 동의어로 놓고 있는
입장이라고 할수 있다.

둘째 한국은행의 기능에 관한 문제다.

현재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의 영역에 포함되는 곳은 일반은행들
뿐이다.

제2금융권은 한국은행의 통제권밖에 놓여있다.

특수은행은 물론 일반은행의 신탁계정도 한은 손밖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은의 통제하에 있는 일반은행의 은행계정도 그 비중이 신탁 등
다른 부문에 눌려 50% 아래로 떨어져있다.

제2금융권까지 포함할 경우 은행계정의 비중은 더 떨어져 30%이하가
된다.

따라서 한은이 통화관리등 금융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려면 현재
재무부가 쥐고 있는 제2금융권에 대한 통제기능을 가져야 한다는게
통화론적 입장에서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투금이나 종금사등에 대해도 지준을 부과하는등 실질적인 실질적인
관리권한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제2금융권에 대한 통제를 새로 출범하는 재정경제원이 쥐게
된다면 한은총재가 금통위의장을 맡는 것은 마치 주한미군의 평시작전권
을 한국군 장성이 가진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빗대는 사람들도 있다.

외환부문도 마찬가지다.

과거 고정환율시대와는 달리 이제 환율도 국내 통화와 금리에 따라
실세대로 움직인다.

외환은 재정경제원에서 맡고 통화는 한은에서 맡는 식의 업무분장은
사실상 재무부가 전원을 행사하는 지금의 모양새와 다를게 없다는
지적이다.

세번째는 은행에 대한 감독기능을 누가 갖느냐다.

현재 은행들에 대한 감독원을 한은이 쥐고있다.

그러나 금통위의장을 한은총재가 맡는 형식의 초보적인 독립이
이뤄지면서 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정부가 가져갈 경우 한은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할 것이란데 금융계의 분석이다.

금융자율화가 진전되면서 정책당국의 통제력이 점점 상실되어가는
마당에 은행들에 대한 칼자루인 감독권을 정부측에서 가져간다면
한은이 통화정책을 실효성있게 구사하기 힘들것이란 견해다.

물론 현재의 한은조직이 이른바 "독립(?)"을 얻은 이후에 과연
통화금융정책을 무리없이 이끌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없지않다는게
한은내외의 지적이다.

과거 30여년간 재무부의 길들이기에 순치돼온 탓에 한은 사람들의
자생력에 의문을 보내는 시각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독립된 한은이 감독권까지 가지면 조직이 너무 비대해질수 있고
정부의 일관된 정책흐름에 균열이 갈수있을 것이란 얘기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는 한은이 "어느날 갑자기" 독립될 경우 금융시장에 적지않은 혼란이
야기될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결국 앞으로 한은독립의 구체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같은 논의들이
심도있게 다뤄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한은은 "단계적"으로 독립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독립의 시점과 모양새를 결정짓는 과정에서 한은총재가 아닌
초대경제원장관(부총리)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는
개운치 못한 구석을 남겨 놓은것도 사실이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