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경제정책은 그 내용보다는 정책이 결정되는 메카니즘에 관심이
쏠릴것 같다.

바로 재정경제원장관과 총리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과간의 역학
관계가 애매해서다.

덩치가 그만그만한데다 나름대로 경제문제에 개입할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이들이 경제사안을 얼마만큼 챙기고 장악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자가
달라질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외형만을 보면 종전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친 막강한 재정
경제원의 독주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행정부처를 주무르는 힘의 원천인 예산권과기업을 다스리는 당근과 채찍인
금융.세금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문제는 재정경제원장관의 전결로 종결되게 돼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저기에 "시어머니"를 만들어둔 탓이다.

여기엔 재정경제원으로 힘이 너무 쏠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적인
고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이 총리실의 견제다.

이번에 개정한 정부조직법에는 총리행정조정실장이 차관회의를 주재토록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총리산하로 옮겼다.

여기에다 전부처의 업무수행 실적을 평가하는 심사평가국은 총리실의
한부서가 됐다.

한결같이 종전 경제기획원이 차지했던 자리다.

행조실장에게 차관회의를 주재토록 한 배경에 대해 정부조직법개정안의
취지문에서는 "국무총리실의 실질적인 조정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행조실장을 수석차관으로 격상시키면서 경제와 비경제를 조율하는 실질적인
책임자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비경제사안이 복합된 문제에 대해선 말할것도 없지만 심한 경우 경제부처
에서도 재정경제원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경우 총리실로 달려가는 경우까지
생길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재정경제원은 다른 부와는달리 원령도 만들지 못하게 돼있다.

총리의 "명을 받아야"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소한 절차문제까지 총리의 재가를 받아야만 움직일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총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 또 행조실장이 나서기에 따라 재정
경제원을 얼마든지 지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개각에서 등장한 또하나의 변수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한승수 신임실장이 전직경제부처 장관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비서실장의
기능에 이미 "경제"를 집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잘알고 세계화에 어울리는 인물"로 쓰겠다고 미리 말을 해놓고
그를 뽑았다는 점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경제쪽의 세계화를 주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그의 행동반경이 경제 쪽에 치우치게 되면 3공시절 김정류실장 같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총리실이나 대통령비서실장의 견제가 없더라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그 고유업무가 경제정책 조율이다.

종전처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상공자원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도모할
길이 없어졌으니 경제수석이 나서는 도리밖에 없는 형국이 됐다.

새로 짜여진 경제수석실의 기구자체가 경제부처의 업무를 걸러야만 가능
하게 돼있기도 하다.

이렇게 달라진 역학구조 때문에 앞으로 경제정책이 입안되고 확정되는
과정에서 갖가지 잡음이 터져나올 우려가 없지 않다.

손님보다 "사공"이 많은 배가 된 꼴인 탓이다.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인 형상이다.

적절한 선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험난한 항로를 순항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선장"의 위상이 선명해 지도록 통치권자가 무게중심
을 잡아주어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중론이다.

< 정만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