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탁''과 ''유임''으로 요약되는 이번 차관인사로 그도안 위축됐던 과천
관가의 사기가 다소나마 회복되는 양상이다.

비전문장관에겐 전문가를 보완해 업무의 효율성을 기하게됐고 내부승진
으로 인사숨통이 다소나마 풀리게 됐다는 반응.

하지만 앞으로 경제장관회의가 재정경제원 독주로 운영되는 등 ''별볼일
없어진 회의''가 될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재정경제원의 출범으로 경제장관회의는 활발한 토론의 장이라기 보다는
홍재형경제부총리가 독주하는 타부처를 들러리 세우는 형식적인 회의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 대두.

이와관련,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은 "경제장관회의란 아무 권한도 없는
기획원이 실권을 가진 재무부와 상공부에 간섭키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며
"그러나 정부개편으로 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친 막강한 재경원이 출범했으니
경제장관회의가 유명무실해지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고.

건설.교통.통상문제가 핫이슈가 되더라도 건설과 교통은 한부처에서 맡게
돼 경제장관회의에 올라오기전에 정리가 될 것이란 분석.게다가 홍부총리가
취임사에서 "주무부처의 고유한권한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나가겠다"고
밝혀 경제장관회의까지 올라와 티격태격할 테마는 거의 없을 것이란 전망.

< 안상욱기자 >

<>.이번 차관인사의 특징은 구경제기획원과 행정고시 7회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다는 점이다.

각 부처 차관급중 이른바 힘있는 총리행정조정실장 재정경제원차관이
모두 구경제기획원차관 출신. 강봉균행조실장은 골수 기획원출신인데다
이석채재경원차관도 기획원과 청와대에서만 일했다.

여기에다 표세진공정거래위원장도 과거 기획원에서 국장까지 지낸
인물이어서 기획원출신이 곳곳에서 독주하고 있다는 것.

또 이석채차관 임창열조달청장등이 한이헌경제수석과 같은 행시 7회출신
인데다 재경원의 1급내정자 6명중 절반인 3명을 행시 7회출신들이 차지해
"7회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지적.

반면 고시 7회보다 선배인 6회이상은 이번 인사에서 대거 물러나 조직
개편을 계기로 경제관료들의 세대교차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

<>.재정경제원차관에 구경제기획원출신인 이석채전농림수산부차관이
임명되자 재경원내의 구재무부출신들은 몹시 떨떠름한 표정.

더군다나 이차관이 한이헌청와대 경제수석과 행시 7회동기에다 서울대
상대 동기인 것으로 알려지자 한수석이 이차관을 앞세워 "재무부출신
길들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게 아니냐며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

게다가 이날 타부처 차관으로 옮길 것으로 기대됐던 김용진 전재무부
차관이 아무 자리도 보장받지 못한채 떠나자 재무부출신들은 "부모잃은
고아"같은 신세가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이날 김전차관이 이임식에서 "동료들을 내손으로 내보내 가슴이 아프다"
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자 일부 참석자들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비치기도.

이처럼 재무부출신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자 기획원출신들은 앞으로의
화합을 위해 "표정관리"에 조심하는 모습.

<>.이번 차관인사의 결과가 "무더기 내부승진"과 "유임"으로 나오자
경제부처들은 환영일색인 분위기다.

인사체증이 다소나마 풀릴 것을 기대하며 그동안 위축됐던 사기도 다시
살아나는 양상.

농림수산부와 정보통신부 환경부 노동부등은 기획관리실장이 곧바로
승진하거나 산하기관장이 차관을 맡게돼 안도와 함께 흡족해 하는 표정들.

이들 부처중 장관이 유임된 농림수산부와 장관도 내부승진한 정보통신부
는 전경제기획원이나 전재무부에 차관자리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도 했으나 내부승진으로 결정되자 반색.

정치인을 장관을 맞은 환경부와 노동행정에 인연이 없는 장관을 맞은
노동부직원들은 주요업무를 숙지하고 있는 인물이 차관을 맡게돼 장관을
제대로 보필하게 됐다고 안도.

특히 건설교통부는 통합전의 차관 2명이 건설교통부와 과기처차관으로
모두 현직을 유지하게 되자 온통 축제분위기.

또 장관과 차관을 통합전부처의 장차관이 나누어 맡아 확실한
콤비플레이가 기대된다고 평가.

반면 과기처 직원들은 장관에 이어 차관까지 외부에서 오자 상당히
당혹해하는 표정.

직원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는 부처의 차관을 "경제학박사"가
맡게된 배경이 무어냐며 나름대로 저간의 사정을 분석하기도.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