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새해 첫 영업일인 지난 3일.예전같으면 시무식을 끝낸 창구직원
들이 "한가하게" 새해설계를 하고 있을 때다.

그러나 상업은행 창구직원들에겐 그럴 틈이 없었다.

이날부터 발매를 시작한 상품인 "한아름 사은적금"에 가입하려는 고객들로
하루종일 창구가 북적댄 탓이다.

3일 하룻동안 한아름 사은적금에 가입한 사람은 모두 1만1천2백84명.
계약액만도 1천3백57억원을 기록했다.

하룻만에 계약액이 1천억원을 가볍게 돌파한 상품은 금융권에선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이 상품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

은행측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파격적인 금리를 제시했기때문이다.

상업은행이 제시한 조건은 간단하다.

1월 한달동안 정기적금을 들때는 매달 내는 적금액에서 일정분(4.5-3.2%)
을 깍아준다는 것이다.

3년만기 2천만원짜리 정기적금의 경우 원래는 매달 48만7천8백64원을
적금해야 한다.

그러나 한정판매기간동안 가입하면 2만2천64원 싼 46만5천8백원만
내면된다.

상업은행 정석현마케팅실장은 "3단계 금리자유화이후 은행들이 금리를
조절할수 있는 폭이 커진데다 일반인들의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크게
높아지는 현상이 뚜렷해졌다"며 "창립 96주년을 맞아 고객사은으로
뭘할까 고민하다 결국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금리할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E마트등 유통업계에서 불기시작한 가격파괴의 바람이 이제 금융권에도
백화점 바겐세일형태로 금리를 깍아주는 금융가격(금리)파괴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금리자유화가 완전히 이뤄지지않은 현재의 금융의 여건속에서 금융기관
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가격파괴방법은 예금과 대출을 연계한
상품의 금리를 깍아주는 것.최근 금융권의 가격파괴바람은 그래서
예대연계상품을 중심으로 확산되고있다.

예금규모가 크거나 거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대출금리를 파격적으로
깍아주는 상품은 지난해 11월 동화은행에서 첫선을 보였다.

동화은행의 "편리한 대출통장"에 들고 이통장을 이용해 각종 공과금을
1건이상 자동납부할 경우 은행측은 즉시 1백만원까지 대출해준다.

이 통장을 통해 재산세를 납부하거나 자동납부실적이 2건이상이면 대출
한도가 2백만원까지 늘어나는 식이다.

특히 개인고객주거래제도를 도입해 기여도에 따라 대출이자를 1.5%포인트
까지 깍아준다.

이 상품은 시행 한달반도 못되어 신설은행으로는 이례적으로 신규좌수
8만2천5백39좌,계약액 1천4백9억원(3일 현재)을 기록했다.

임용복동화은행상품개발팀장은 "대체로 주부등 소액 개인거래자들이 이
통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이는 큰손 고객뿐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금리민감도까지도 매우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의 가격파괴양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좌대출한도 지급보증수수료 외환거래수수료 신용장(L/C)발행수수료등
각종 할인도구를 통해 가격이 무너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임원들이 대기업 외환담당실무자들을 찾아다니며 할인조건을
일일히 설명하고 다닐 정도다.

금리파괴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경우 적금의 할인대출이 일반화된 상태고 일본에서도 직장인들의
보너스가 나오는 달에 한시적으로 금리를 올려주는 상품이 많다.

이건호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자유화와 금융자율화가 진행되는 것은
한마디도 규제가 풀린다는 것은 뜻한다"며 "이는 금융기관간 경쟁 심화를
예고한다"고 말한다.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선 금융기관도 가격(금리)를 내릴수 밖에
없고 이런 현상이 "필연적으로" 우리나라에도 도입되는 것이란 해석이다.

금리파괴는 물론 은행 경영에 좋지않은 영향을 준다.

상업은행의 한아름 사은적금에 주는 할인금리를 놓고 내부에서도 "이
정도의 금리면 은행도 남는게 없다"(정실장)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업은행은 그래서 이 적금에 들어온 자금으로는 대출을 줄수가 없다.

회사채나 CD등 고율상품으로만 전액 운용해야만한다.

다른 거래를 할때 떨어지는 수수료등 "떡고물"과 2,3년 거래를 트게
되면 장기고객이 된다는 기대를할 뿐이다.

결국 아직도 많은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은행들이 현단계에서 가격파괴
를 실시하는 것은 일종의 실험이고 이 실험이 성공여하에 따라 금융권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