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운전을 못할만큼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기계라는 것이 무조건
무서워서다.

몇년전에는 운전학원에 다니며 운전면허증에 도전해 본 일도 있다.

가끔 들꽃이 보러 혼자서 교외로 드라이브하고 싶을 때나 새벽에 방송국에
데려다주고 밤늦도록 기다리는 운전기사에게 미안할 때는 운전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큰 맘 먹고 과감하게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학원입구만 가도 다리가 떨렸지만 하루하루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고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앞으로 가는 것이 무서웠지만
신기했다.

그런 어느날. 학원에서 바로 앞차가 벽을 들이받더니 그만 문짝이 떨어져
차가 주저앉아버리고 마는 걸 보았다.

필자는 그날 바로 운전학원을 그만두었고 지금까지 그래서 운전면허증이
없다.

이렇듯 필자가 자동차에 대해 겁이 많다보니 우리 운전기사 아저씨도 절대
과속 신호위반을 하지 않은 모범기사가 됐다.

우리 차 앞은 항상 안전거리가 넓어 끼어드는 차가 많다.

그래도 우리 기사아저씨는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차가 주인을 닮는 법.우리 차도 항상 여유롭게 길을 다닌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바깥양반의 차는 좀 다르다.

마찬가지로 주인을 닮아서다.

그래서 남편 차에만 타면 꼭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다른 차가 끼어든다고 남편이 신경질을 내면 필자가 남편을 다그치게된다.

남편이 다른 차가 끼어든다고 화를 내면 필자가 "좀 양보해주지 뭐 그리
급하냐"고 소리를 높여 자주 승용차안의 작은 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필자도 운전을 할 줄 안다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운전대 잡은 입장,안 잡은 입장이 뭐 그리 다를까.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만 한다면 서울의 거리는 한결 평화로워질 것이다.

언젠가 한 겨울 고속도로를 달릴 때의 일이다.

어떤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는지 부인인듯한 아주머니가 목도리를 흔들며
뒤에 오는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남편인듯한 사람은 자동차 보닛을
열고 전등을 비춰보고 있었다.

필자는 곧바로 우리 차를 세워 우리기사 아저씨가 더러 차를 손보도록했고
필요하면 우리 카폰도 쓰도록 했다.

기사아저씨가 한참 허리를 구부려 엔진을 만지고 시동을 다시 걸고 하더니
차는 고쳐졌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차를 먼저 보내고 우리가 흐뭇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아마 그 차주인은 운전할 줄만 알지 차량구조와 정비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차도 주인을 닮아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느날 남편이 저녁에 들어와 뭔가를 신기한듯이 보여줬다.

어느 빌딩에 들어갔다가 볼일을 다보고 나오니 차 앞 유리창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복사본과 메모가 남겨있더라는 것이다.

메모에는 "실수로 차를 훼손시켰습니다.

1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시지 않아 이렇게 메모를 남깁니다.

전화주십시요"라는 정중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냥 가버려도 될 것을 이렇게 한 것을 보고 남편은 신기해했다.

만나보니 예상되로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자동차는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 주인을 꼭 빼 닮는다.

실수로 남의 차를 훼손시키고 1시간이나 기다리는 사람.

그의 차는 아마 과속, 신호위반, 끼어들기를 절대 하지않을 것이다.

"운전은 인격"이란 말을 그래서 필자는 믿는다.

올해는 거리에 인격자들이 더욱 많이 늘어서 즐거운 운전이 되길 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