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직급 정년제" 임원이라도 제때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해야하는
제도이다.

대기업 정기인사의 "이사대우 풍년"은 이같은 제도의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등재이사가 아니여서 "반쪽 임원"이라고 불리우는 이사대우들은
그동안 겪어왔던 것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제대로 생긴
"별"을 달수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이미 임원직급 정년제를 도입,앞으로 5년동안 승진하지
못한 임원은 퇴사시키게 된다.

이 제도는 현대그룹 계열사는 물론 각기업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해 2백명의 이사대우가 탄생했다해도 정식임원이 되는 사람은 계속
적은 숫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낙타가 또다른 바늘구멍을 통과해야하는 셈이다.

이사대우 풍년은 이런 측면에서 "임원의 인플레현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대부분 이사대우들의 업무가 부장급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점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

더욱이 각기업들이 부장으로 정년퇴직할수 있도록 하고 발탁을
통해서만 임원을 선정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어서 능력이 없으면
임원은 꿈도 꾸지 말아할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별을 다는 시대는 끝났다.

각기업 인사담당들은 "아직은 정식임원이 많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지만 곧 그같은 부담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경쟁원칙만이 올해 이사대우 풍년을 맞게 한 것은
아니다.

각그룹의 경영혁신은 삼성의 신경영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그동안
톱다운 형식을 취해왔다.

모든 기업들이 이같은 형식의 경영혁신운동을 펼치면서 최고경영진의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와 방향설정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행동에 옮기고 하부조직까지 침투시키기 위해 "중간허리층"을
보다 강화하려는 포석이 초임임원의 대거 승진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때마침 사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인사구조 변화를
재촉했다.

WTO체제등 세계화추세로 국제업무경험이 많은 인물들이 대거 승진했다.

정부의 신규업종 진입 규제완화에 따른 경쟁격화는 공격형 경영을
유도하면서 발탁인사를 부채질했다.

연공서열에 의한 인사는 가능한한 배제되고 있다.

"물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40대 초반의 신진세력들이
"별자리"주의에 대거 포진해 있다.

인사에 보수적이라는 평을 들어오던 현대그룹의 종합기획실 홍성원이사
(인사담당)는 이번 인사의 성격을 이렇게 밝힌다.

"이사대우의 대폭 승진인사는 능력에 의한 인사체제로 완전히 전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장 2년차의 이사대우 승진이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이같은 변화를
대변한다" 물론 이같은 흐름은 지난해 장사를 잘했다는 전자업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대전자의 경우 부장2년차에서 이사대우로 승진한 사람이 로길성
김학성 백윤길 조남천 심성식 윤상균등 6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개 입사 16-17년차.승진이 타기업에 비해 느린 현대그룹에서는
그들 동기들이 대부분 고참차장에 머물고 있어 발탁의 의미를 실감케
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전자를 중심으로 80년 입사자들이 대거 승진했다.

전자의 조수인이사대우는 82년 입사로 동기들이 부장승진을 기대하지도
못하고 있을 정도이다.

물산 김재식,중공업 박중흠,생명 박현문,제일기획 신재환이사대우등이
대표적인 발탁 사례이다.

이번 이사대우의 승진에서 전문직과 여성에 대한 배려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재계 처음으로 여성임원을 배출한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올해도 전문직종의 여성부장을 이사대우로 승진시켰다.

현대는 중앙병원의 유현숙간호부장을,삼성은 의료원의 이정희간호부장을
각각 이사대우로 올려 여성과 전문직에 대한 배려를 했다.

물론 이같은 배려는 뛰어난 전문직 사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같은 노력이 더욱 활발하다.

삼성은 이번 인사에 앞서 이사대우의 명칭을 이사보로 바꾸면서
임원으로 승진한 전문직들을 이사대우로 부르기로 했다.

이에따라 그룹내에서 12명의 새로운 이사대우가 탄생했다.

호텔신라의 중식당조리부장인 후덕죽이사대우,항공의 헬기기장인
이진구이사대우,중공업의 건설현장 프로젝트매니저인 전종배이사대우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