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실명제가 벌써부터 난산을 예고하고 있다.

기본적인 골격이 제시되긴 했으나 정작 실제 영향을 미치게될 구체적인
사안에 가선 관계부처들이 전혀상반된 방향의 주장을 내놓아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보안에만 신경을 쓰느라 사전에 관계부처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탓이다.

현장에서의 미묘한 사례들을 가장 잘아는 주무부처들을 따돌리고 법안을
만들었으니 진통을 빚는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부동산실명제 발표이후에야 드러나기 시작한 관계부처들 간의 시각차이는
지난 11일 "부동산 실소유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시안이 밝혀지면서는
노골화 되는 양상이다.

실명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의 위법사실에 대한 처벌이나 탈세액
추징, 명의신탁금지 예외인정범위등 굵직한 줄거리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대체로 이번 작업을 주도한 재정경제원 측에선 "우선 제도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의 위법사실을 불문에 붙이고 앞으로도 예외 폭을 가급적 넓게
터주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자리를 잡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재경원 측에서 가장 고민하는 대목은 국민들의 불안심리다.

과거의 탈세나 위법사실을 들추어 낸다고 하면 실명전환을 기피할
것이고 부동산실명제는 이름만 남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다.

작년에 한 금융실명제 때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었다.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수있는 경우는 예외로 돌렸으며 고액실명전환자에
대한 과거추적을 아직까지도미루고 있다.

재경원은 이번에도 출발하는 싯점에서는 지나치게 강경한 조치를 배제
시켜야 충격없이 부동산실명제도 관행화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에 부동산투기나 주택문제를 다루는 건설교통부는 "원칙과 형평"을
내세워 철저한 과거추적과 예외최소화를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탈법사례나 탈세가 드러나도 문제삼지 않는다면 그동안 법을
착실하게 준수해온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격도 없으면서 농지를 사두었거나 전매금지기간에 아파트를 미등기전매
한 "범법자"들에게 법을 어겨 이룩한 부를 정당화해 주어서야 되느냐는
지적이다.

부동산투기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부동산실명제를 실시한다면서 투기꾼을
보호해 주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게 부동산당국의 입장이다.

국세청도 탈세에 관한한 이와 비숫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금융실명제와는 성격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든다.

부동산은 돈과 달라 당장 처분할 수도 없고 숨어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충격을 주면 시장이 침체돼 도움이 되기 때문에 원칙을 최대한
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