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라는 책이 있다.

320년전인 1675년에 쓰여진 한국의 고대사를 기술한 사서로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북애자라는 사람이 고려때 이명이 남긴 비기의 하나인
"진역유기"를 토대로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태시기"에 단국이전 동방인류의 조상이었던 "신시씨"의 명을
받아 "신지씨"가 문자를 만들었다고 적어 놓았다.

모래사장 위에 암사슴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이 글자를 고안했는데
북애자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육진지역과 만주 선춘영밖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 "범자도 전자도 아닌것"이 "신지문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북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최근 "신지문자"를 공개하고 훈민정음이 단국시대
이전부터 쓰인 "신지문자"를 계숭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한다.

한민족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해도 역시 "한글"이다.

세계문자사의 흐름을 보면 이웃나라에서 쓰는 문자를 받아들여 조금
고쳐서 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한글은 문자의 계통으로 보아서는 어떤
문자로 부터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창안된 문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훈민정음창제"라는 대사업을 누가,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 것인지에 대한 초기 기록이 전혀 없다.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세종실록 25년 12월30일)
훈민정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창제사실을 밝히고 있는 이런 짤막한
기사로부터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탓으로 예부터 훈민정음의 기원에 관한 학설은 발음기관상형기원설,
고전자 기원설부터 창문상형기원설에 이르기까지 10여가지가 나와 있으나
제자방식이나 글자꼴의 유사성에 주안점이 두어져 있었다.

남한 국어학계에서는 오히려 창제자가 누구였느냐는게 더큰 관심거리
였다고 하겠다.

세종의 "명제설" "협찬설" "친제설"이 정권의 변화에 따른 시류를 타고
이리저리 부침 하다가 요즘은 세종의 "친제설"이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신지문자계승설"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해석은 다양한 시각에 입각해 제시되고 항상 수정을 받아야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재해석은 타당성 있는 증거와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 한
인정된다.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민족감정을 지배하기위해 사실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까지 "역사창조"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