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태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세계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으로서의 객관적인 현상과 우리의 의지로
성취해 나가야 하는 주체적인 목표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전자는 냉전체제 붕괴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오던 국가경제간 상호의존
관계의 심화가 냉전종식이후 가속화되면서 적어도 경제행위에 관한한 국경
장벽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현상이다.

그 배경에는 혁명적인 정보통신기술의 출현, 다국적기업의 초국적기업으로
의 진화, 유럽연합(EU)을 필두로 하는 지역경제통합의 심화, 세계무역기구
(WTO)체제의 출범등이 촉진제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는 국경장벽이 가시적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으나 정치적
으로는 국가간의 긴장과 갈등이 오히려 격화되고 있는 이율배반적 현상이
혼재하고 있다.

즉 경제는 국가의 범주를 벗어나 국제화해 왔고 이제는 세계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으나 정치는 19세기 이후의 민족국가중심의 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어하는 개방적인
경제논리와 자국의 고용유지및 기업보호를 내세우는 폐쇄적인 정치논리가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국제경제질서도 자유무역주의와 관리무역주의, 다자주의와
지역주의의 상반된 움직임이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주의와 국가주의의 혼조현상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세계화의 성격규정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세계주의적 관점에 설때 우리의 세계화방향은 나라 바깥으로의 적극적
진출, 국내시장의 과감한 개방,제도와 관행의 국제적 기준에의 합치등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 지구촌경제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국가주의적 관점에 설때의 세계화 지향점은 오히려 부단한 내부
개혁을 통하여 스스로의 힘을 길러서 밖으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세계주의와 국가주의를 통합하는 총체적 세계화는 대외진출,
시장개방과 제도.규범의 국제조화, 그리고 내부적 개혁이라는 3대 요소로서
구성된다.

세계화가 우리의 생존전략 내지는 발전전략으로서의 성과를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3대 구성요소가 상호보완적으로 유기적인 연결을 유지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종래의 부국강병식 개발전략은 적지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제약
요인의 강화와 국내적 발전의 결과 더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전략임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내부역량의 축적과 대내외개방이 선택 또는 선후의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병행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화의 3대 요소중에서 대외진출과 시장개방및 제도.규범의 국제적 조화
는 기본계획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남은 과제는 우리의 능력과
국제환경을 고려하여 부작요을 최소화하면서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부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부의
분명한 전략제시가 없어 국민의 궁금중을 더해줌은 물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국민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세계일류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세계화라고 할수 있지만, 정부가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제도개혁의 틀과 내용에 따라서 국민개개인의 행동양식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는 제도개혁의 프로그램을 명확히 할 책무가 있다.

제도개혁도 당면하고 있는 문제해결중심의 단기적인 접근에 치우치다 보면
얼마 안가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는 과거의 잦은 교육제도변경이 어떠한 부작용을 낳았는가를 상기하면
금방 알수 있다.

따라서 제도개혁은 미래한국의 모습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정립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한 다음 그 토대위에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