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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칼] (712) 제3부 정한론 : 대내전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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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윽크-"

    "에잇!"

    "악!"

    사이고가 배를 까내어 단검을 푹 박아서 좍 옆으로 가르는 순간 벳푸는
    냅다 대검을 휘둘렀다.

    번쩍 칼날이 빛나면서 사이고의 목이 싹뚝 잘리어 대가리가 툭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비실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졌다.

    새벽녘에 시작된 공격은 두세시간만에 끝났다.

    독안에 든 쥐의 신세였던 사이고의 마지막 3백여명의 군사들은 전원
    장렬하게 죽어갔다.

    기리노와 무라다등 사이고의 심복이며 이번 내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그들도
    끝까지 싸우다가 죽어갔다.

    그날 오후,아침나절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고 천둥이
    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구 퍼부어대는 소나기였다.

    시로야마의 여기 저기에 반군과 관군의 시체들이 뒤섞여 널려 있었는데,
    빗줄기는 그 수많은 시체에서 피를 씻어내어 벌건 홍수를 이루어서 계곡으로
    콸콸콸 흘렀다.

    사이고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고시마를 출발한 날은 때아닌 함박눈이
    쏟아지더니,그가 패군의 장이 되어 가고시마로 돌아와 비통한 최후를
    맞이하자 이번에는 난데없이 소나기가 퍼부어대다니. 하늘도 그냥
    무심하지만은 않았다고 할까.

    막부를 타도하고,왕정복고를 이룩하여 낡은 시대를 마감하고,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세의 영웅 사이고는 대역무도한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생을 마감했는데,그의 나이 51세였다.

    문명보다는 도의를, 권력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한 군자형의 정치가였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그렇게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져 갔다.

    7개월여에 걸쳐 규슈 남부를 무대로 사이고의 반군과 정부군이 싸운 그
    내전을 일본의 역사는 서남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열도의 서남쪽에서 벌어졌던 전란이기 때문이다.

    그 서남전쟁은 일본의 역사에서 마지막 내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사족의 시대는 실질적으로 끝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사이고가 죽은지 12년뒤인 1889년,메이지 연호로는 22년 2월에 일본제국의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때 사이고에게 메이지 천황의 사면이 내려져 그는 국적이라는 죄명을
    벗었고 박탈당했던 관위도 정삼위로 추증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사이고가 반란을 일으킨 죄과보다 막부를 타도하고,왕정복고
    를 이룩했던 그 공훈을 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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