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구로다는 주사가 고약한 사람이에요. 그날밤도 한바탕 소란을
떨어서 끌어내다시피 해서 귀가시켰지 뭡니까. 집에 돌아가서 결국 그런
끔찍한 일을..."

오쿠마도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오쿠보는 약간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주사는 좀 있는것 같지만, 마누라를 죽일 정도로 구로다가 잔인한 사람은
아니오. 나는 도저히 이 기사를 믿을 수가 없소"

구로다를 끝내 감싸안으려는 듯하자, 이토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좀
항의조로 나갔다.

"그날밤 구로다가 술자리에서도 군도를 빼들려고 했었단 말입니다. 동료
에게도 칼을 휘두르려고 했는데, 마누란들 안중에 있었겠습니까? 내가
보건대 구로다는 술미치광이예요. 항간에 그동안 소문이 돌다가 신문에
기사화되기까지 했는데, 정부의 고관이라고 해서 살인을 묵과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말이에요. 처벌을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늘 고분고분하던 이토의 입에서 항변조의 말이 나오다니,
오쿠보는 적지아니 불쾌했다.

그러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를 해보겠소. 이 기사가 사실로 판명이 되면 조치를
내려야지요. 나한테 맡기고 돌아가도록 하오"

이렇게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이토와 오쿠마가 신문을 탁자 위에 놓아둔채 돌아가자, 오쿠보는 곧
경시청장 가와지를 불렀다.

가와지가 와서 마주앉자, 오쿠보는 턱으로 탁자 위의 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신문기사 보았소?"

"아, 구로다 장관의 기사 말씀이죠? 봤습니다"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 구로다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오. 신문이
함부로 그런 기사를 게재해도 되는 건가요?"

"그렇잖아도 처벌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엄하게 처벌하도록 하오"

"폐간 조치를 내릴까요?"

"물론이오. 기사를 작성한 자와 편집책임자는 잡아가두고..."

"예,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게 아니오. 이미 그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려야 하오. 검시를 해보도록 하오. 그리고 검시
결과를 세상에 공표하는 거요. 나는 절대로 신문기사가 허위라고 믿고
있으니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