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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진실인지 왜곡된 묘사인지 직접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그동안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을 재정립해보려는 노력은 여러각도로 전개돼
왔다.

그러나 세계최고수준이라는 "생산공장 현장"에 대한 분석적 평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유지수씨는 미일리노이대에서 생산관리를 전공하고 서미시간대와 국민대
에서 이를 강의해 왔으며 일본에 소재한 "아시아생산성기구"의 연구조사
위원으로 일본의 산업현장을 4년째 누비고 있다.

유박사 눈에 비친 일본의 생산현장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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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쫓아가 볼만한 나라인가.

그대답은 양분되어 있다.

"일본은 없다" 또는 "일본은 있다"는 논쟁은 엇갈린 평가를 반영한다.

분명한 것은 경제대국 일본도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세계최고의 공장생산성"과 "후진국수준의 사무실생산성"이
공존하는 나라라는 것이 일본인들 스스로의 평가다.

사무실의 비효율성이 공장의 효율성을 상쇄하여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경제 산업 기업등 모든 부문에서 특정국가, 특히
일본을 추종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고 할수 있다.

일본의 성공 전철을 잘 쫓아가기만하면 우리도 큰 실패없이 경제성장을
이룩할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른바 "후개발 무위험논"이 그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와같은 사고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정부가 취해온 그간의 산업정책수립과
실행에 많은 실패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53년에 당시 소기업에 지나지 않던 소니가 2만5천달러 상당의
트랜지스터 기술을 미국에서 도입하려는 신청서를 통산성에 제출한 적이
있다.

이때 통산성은 이처럼 작은 기업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이 믿음직스럽지
못했을뿐 아니라 귀중한 달러를 아낀다는 생각에서 이 신청을 기각하였다.

이때 현재 은퇴한 소니의 전회장 모리타 아키오씨의 끈질긴 설득과 시도를
통해 결국 도입허가를 얻기는 했다.

만약 통산성이 이를 끝까지 기각하였다면 현재 세계 전자전기 산업의
판도가 변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통산성은 1950년대초 자동차 산업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투자의 중복을
피한다는 명목하에 자동차회사를 하나로 통합시키려 했다.

물론 업계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이 통합안이 관철되었다면 경쟁을
토대로 발전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을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 없다.

흔히 일본의 방대하고 효율적인 철도시스템은 일본정부가 만들어낸 걸작
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일본 국철이 민영화되기 전까지는 1천5백4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고 있었으며 이 적자는 결국 이용자인 일본국민이 모두 부담하고
있었다.

민영화 이후에는 흑자를 내고 있으나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금을
내야 이용할수 있는 것이 일본의 국철이다.

이외에도 정부가 주도해온 아날로그 방식의 HDTV, 항공기, 컴퓨터운영
시스템의 개발등에서 밝혀졌듯이 민간에 맡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으로
평가되는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많다.

이는 일본의 권위적 관료주의에 막연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우리의 편견에
경종을 울려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