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제2반도체전쟁' 점화 .. D램신화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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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반도체 신화는 탄생할 것인가" 한국과 일본 기업들간 "반도체
선두다툼"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제2 산업의 쌀"로 불리는 TFT-LCD(초박
막 액정표시장치)분야로 옮겨붙어 본격 점화됐다.
삼성전자의 TFT-LCD 양산공장 준공은 이 분야 세계시장을 90%이상 차지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국내업체의 추격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LG전자와 현대전자도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양산체제 가동에 들어가
일본 추격에 나선다.
관심의 초점은 TFT-LCD분야에서도 한국기업의 "D램"신화가 재현될 것인가다.
국내업체들은 D램분야에 뛰어든지 10년만에 세계 정상을 차지했다.
이번에도 "기술력 열세"와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안고 일본추월의
기적을 일궈낼수 있을 것인지가 벌써부터 주목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 LG 현대등은 과거 D램 초기투자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투자물량전"
으로 초반 승부를 걸겠다는 태세다.
이들 기업체의 패기는 투자규모에서 잘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올해를 시작으로 오는 96년까지 3,500억원을 추가 투자해
"2공장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1공장건설에 들어간 투자금액을 합하면 TFT-LCD 초기투자에 쏟아붓는 돈만
6,500억원에 이른다.
LG전자도 5,700억원을 투입해 올상반기 유리기판 2만장 가공공장을 건설한
뒤 곧바로 2공장을 착공키로 했다.
현대전자 역시 하반기에 유리기판 2만장 양산체제를 가동하고 두번째
공장건설에 들어갈 방침이다.
총 투자금액은 5,000억원.국내업계는 이들 3사의 2공장이 완공되는 오는
97년께 유리기판 월 12만장의 가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산업화 2년만에 세계시장 10%이상을 점유하는 생산규모를 갖추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2의 D램신화"가 창출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당장의 극복대상은 일본 기업들의 대한견제.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 경계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업체들이 TFT-LCD양산공장 건설에 들어가자 "제2의 반도체 사태"가
나타날지 모른다며 경계의 고삐를 바짝 당기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술정보를 차단하거나
핵심부품 수급을 제한하는등의 "견제구"가 날아들 가능성이 높다.
(현대전자 LCD사업본부 박해성차장)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지적재산권.
국내업계는 TFT-LCD분야에 대한 기본특허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일본및 유럽기업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경우 특허에 대한 클레임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특허청 제도과 조현석심사관)고 국내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로열티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매출액의 30%이상을 빼앗길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업계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기술정보의 차단은 자체기술로 맞대응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가 일본 알프스전기와 생산공정에 관한 공동연구법인을 지난해
설립하고 지난 93년 현대전자가 미국에 이미지퀘스트사라는 TFT-LCD
연구전문회사를 세운 것도 자체기술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국내 업체의 기술발전 속도로 볼때 컬러필터등 핵심부품도 97년께 국산화
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적재산권문제에 대한 카드는 크로스 라이선스.TFT-LCD는 반도체 기술과
맥을 같이 한다.
TFT-LCD제조업체가 대부분 반도체생산기업인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도체분야에서 축적한 특허기술을 선진 기업들과 공유할 경우 특허분쟁을
충분히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 국내업체들의 생각이다.
이같은 "대일 추월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인 제조장비를 국산화해야 하는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제2의 D램신화" 창조를 위한 국내업체의 대장정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기업에 돈을 뭉터기로 안겨주는 황금산업이라고해서 "캐시 카우(cash cow)
비즈니스"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TFT-LCD분야에서 "세계정상"이라는 험난한
고지를 정복하려는 국내 업체의 거센 도전,여기에 대응하는 일본기업의
수성전략이 바야흐로 한바탕 불꽃을 튀기려하고 있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
선두다툼"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제2 산업의 쌀"로 불리는 TFT-LCD(초박
막 액정표시장치)분야로 옮겨붙어 본격 점화됐다.
삼성전자의 TFT-LCD 양산공장 준공은 이 분야 세계시장을 90%이상 차지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국내업체의 추격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LG전자와 현대전자도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양산체제 가동에 들어가
일본 추격에 나선다.
관심의 초점은 TFT-LCD분야에서도 한국기업의 "D램"신화가 재현될 것인가다.
국내업체들은 D램분야에 뛰어든지 10년만에 세계 정상을 차지했다.
이번에도 "기술력 열세"와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안고 일본추월의
기적을 일궈낼수 있을 것인지가 벌써부터 주목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 LG 현대등은 과거 D램 초기투자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투자물량전"
으로 초반 승부를 걸겠다는 태세다.
이들 기업체의 패기는 투자규모에서 잘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올해를 시작으로 오는 96년까지 3,500억원을 추가 투자해
"2공장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1공장건설에 들어간 투자금액을 합하면 TFT-LCD 초기투자에 쏟아붓는 돈만
6,500억원에 이른다.
LG전자도 5,700억원을 투입해 올상반기 유리기판 2만장 가공공장을 건설한
뒤 곧바로 2공장을 착공키로 했다.
현대전자 역시 하반기에 유리기판 2만장 양산체제를 가동하고 두번째
공장건설에 들어갈 방침이다.
총 투자금액은 5,000억원.국내업계는 이들 3사의 2공장이 완공되는 오는
97년께 유리기판 월 12만장의 가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산업화 2년만에 세계시장 10%이상을 점유하는 생산규모를 갖추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2의 D램신화"가 창출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당장의 극복대상은 일본 기업들의 대한견제.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 경계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업체들이 TFT-LCD양산공장 건설에 들어가자 "제2의 반도체 사태"가
나타날지 모른다며 경계의 고삐를 바짝 당기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술정보를 차단하거나
핵심부품 수급을 제한하는등의 "견제구"가 날아들 가능성이 높다.
(현대전자 LCD사업본부 박해성차장)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지적재산권.
국내업계는 TFT-LCD분야에 대한 기본특허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일본및 유럽기업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경우 특허에 대한 클레임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특허청 제도과 조현석심사관)고 국내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로열티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매출액의 30%이상을 빼앗길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업계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기술정보의 차단은 자체기술로 맞대응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가 일본 알프스전기와 생산공정에 관한 공동연구법인을 지난해
설립하고 지난 93년 현대전자가 미국에 이미지퀘스트사라는 TFT-LCD
연구전문회사를 세운 것도 자체기술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국내 업체의 기술발전 속도로 볼때 컬러필터등 핵심부품도 97년께 국산화
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적재산권문제에 대한 카드는 크로스 라이선스.TFT-LCD는 반도체 기술과
맥을 같이 한다.
TFT-LCD제조업체가 대부분 반도체생산기업인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도체분야에서 축적한 특허기술을 선진 기업들과 공유할 경우 특허분쟁을
충분히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 국내업체들의 생각이다.
이같은 "대일 추월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인 제조장비를 국산화해야 하는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제2의 D램신화" 창조를 위한 국내업체의 대장정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기업에 돈을 뭉터기로 안겨주는 황금산업이라고해서 "캐시 카우(cash cow)
비즈니스"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TFT-LCD분야에서 "세계정상"이라는 험난한
고지를 정복하려는 국내 업체의 거센 도전,여기에 대응하는 일본기업의
수성전략이 바야흐로 한바탕 불꽃을 튀기려하고 있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