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헨리4세"에서 "소문이란 것은 제멋대로의 추측과 악의가
불어 대는 피리"라고 했다.

소문에는 언제나 그것을 퍼뜨린 당사자의 악의적인 목적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 사이에서 그 어느 것보다 가장 빨리 전파되는 속성을 지닌 소문
이기에 종내에는 엄청난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적지않다.

소문은 한마디로 악의 근원이 된다는 얘기다.

고대로마군이 마케로니아의 왕 페르세우스와의 전쟁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군대를 재정비할 시간여유를 얻고자 협상을 제의했다는 헛소문을
마케로니아군에 유포시켰다.

그 소문에 정신이 팔린 페르세우스는 며칠동안 휴전을 하는데 동의를
하여 로마군의 숨통을 터주었다.

그때문에 페르세우스는 로마군에게 패배를 당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역사를 되돌아 볼때 그러한 처실전법은 적국이나 적군을 교란시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흔히 원용되는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왔다.

그러나 후세 역사가들은 헛소문을 퍼뜨려 대량살륙을 유도해 내었던
악행을 용납하진 않았다.

고대로마의 폭군 네로가 로마시가를 불태운 뒤 그 책임을 기독교들에게
전가시켜 그들을 살륙했던 일이 오늘날까지도 역사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일제가 1923년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뒤 자행한 잔학행위는 네로의
전례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었다.

일제 치안당국은 "조선인이 집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
"조선인의 집단이 대거 습격해 온다"는 등 헛소문을 퍼뜨려 일본민간인
들과 군대로 하여금 적게는 6,000여명,많게는 1만여명의 한국인들을
도륙하게 만들었다.

일제는 자연의 재해로 빚어진 관동대지진의 참상책임을 무고하고 힘없는
한국인들에게 전가시켜 일본인들의 불만을 해소해 보려는 네로적 수법을
재연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착오적인 헛소문을 공공연히
되풀이하는 일본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는 아연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지난번 관서대지진때 "재일한국인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한 참의원의원의 의회발언은 관동대지진때의 쓰라린 상은들을 일깨워
주는 망령의 재현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정치지도자들이 몇차례인가 "일제36년을 사죄한다"는 공언이
있어 온바 있지만 그 의원의 망언은 일본인들 의식저변에 한국인들을
불신하고 멸시하는 무의식적 우월감이 잠재해 있음을 표출시켜 준 것이라
고도 볼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의 구름이 걷힐 날이 멀기만 한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