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라 < 연극연출가 / 극단 무천 대표 >

옛날옛적 지리산 깊숙이 절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노스님 한분과 그분을 모시는 동승,호랑이 한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동승과 호랑이는 서로 의지하며 산사의 고적함을 함께 누리고 살았다.

어느날 노스님의 저녁공양을 준비하던 동승이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피를 보고 깜짝놀란 호랑이가 걱정스레 동승의 베인 손가락을 핥아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난생처음 맛본 피맛에 호랑이는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동승을 먹어치운 것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호랑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지만 뱃속에 든 동승을
다시 살릴수는 없었다.

그후부터 호랑이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땅만보며 걷는다고 한다.

나는 지리산밖 호랑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호랑이들과 얽힌 나의 이야기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정치 경제 문화의 잘못된 상관관계를 들춰내는
일일 것이다.

93년 10월 필자는 문화체육부가 제정한 "젊은예술가상"을 받았다.

상패와 금한냥짜리 메달을 받고 문체부장관과악수도 나눴다.

신문들은 이 상을 받은 연극인에게는 해외공연시 우선지원하고 국내공연의
경우도 먼저 지원한다는 포상내용을 상세히 발표했다.

현장성과 일회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연극이 순수예술로서의 멋과 향기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현실적으로 각계의 지원뿐이다.

따라서 이같은 지원책이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민족의 정신을 지켜나갈
예술인들에 대한 응원이 아니겠는가 싶어 무척 반가왔다.

그리고 용기와 힘이 생겨 신나게 작업을 준비했다.

때마침 유럽과 일본등 해외에서 공연초청 문의가 쇄도했으므로 필자는
문화체육부에 보일 멋진 밥상을 차리는데 흥분해 있었다.

그뿐인가.

대통령께서는 기업인들과 문화인들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또한 그즈음 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태동되고 있었다.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청와대의 초겨울 햇살을 받으며 신나하던 문화계 얼굴들이 말이다.

젊은예술가상을 받은지 6개월도 못되어 문체부를 찾았다.

온갖 공문과 자료를 들고 지원창구에 찾아가서 해외공연과 국내공연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담당국장 앞에서 그 부서의 말단직원처럼 서서 브리핑을 하면서 난감했지만
그동안 국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담당국장의 말은 문체부에는 예산이 없으니 기업메세나협의회를 통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메세나협의회를 매일같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문전박대, 혹은 비서를 통한 "회의중" 메시지뿐이었다.

초조한 사람은 필자뿐만 아니었다.

공연을 초청한 덴마크페스티벌본부는 코펜하겐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공연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그후 대사관은 외무부에 지원요청을 했고 무려 7개월에 걸친 페스티벌본부
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원불가 통보를 받았다.

결국 우리극단은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15개국 극단중 유일하게 정부나
재계의 지원없이 참가하게 됐다.

배가 고파 못살때는 새마을운동, 경제개발5개년계획, 선진국콤플렉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뛰었다고 하자.

서울올림픽, 대전EXPO를 치른 나라, 정보화 국제화 세계화의 화려한
외침속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이 대한민국은 앞서가는 사람들의 흔적만이
화려하다.

호화판 공연극장이나 "문화"따위의 수식어가 붙는 멋진 타워들 말이다.

별로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그러나 미친듯이 한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물밑흐름으로 소리없이, 그리고 한결같이 1백년후 문화의 나라 한국을
빛낼 사람들, 그들 모두는 지금 고독하다.

규모와 화려함에 밀려서 표류한다.

아니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있다.

동승처럼 높으신 분들의 뱃속에 있으니 말이다.

지리산에 얼굴 못들고 다니는 호랑이 한마리, 정말 그 호랑이가 한마리쯤
지리산에서 서성이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