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사간 교섭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좀처럼 절충이 안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가 많은데다 노사쌍방이 처음부터 설득력있는
협상안을 내놓지않기 때문이다.

노사간 고질적인 불신도 이같은 교섭태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6월말 파업이 발생했던 (주)금호의 경우 퇴직금누진제와 징계위
노사동수구성,해고자10명복직등 노조측의 요구로 인해 마찰이 빚어졌다.

파업한달만에 정상조업이 이뤄졌지만 이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부제강도 지난해 9월 임.단협 교섭과정에서 노조간부인사때 합의,
퇴직금누진제등 유사한 쟁점들로 인해 파업이 발생했다.

"노조측이 근로조건 개선요구에 관한 실질적인 교섭보다는 애초에
수용이 어려운 인사.경영권참여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분규가
일어났다"(동부제강 L부장)

퇴직금누진제나 인사위원회 노사동수구성등은 최근들어 노사단체협상에서
대부분의 노조가 요구하는 단골메뉴다.

임금이나 근로조건 개선등 과거 노사간 쟁점이 희석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에따라 매년 발생하는 노사분규가운데 단체협약조항으로 인해 분규가
발생하는 비율도 <>지난 90년 15.2% <>91년 23.9% <>92년 20.9% <>93년
36.1% <>94년 33.9%등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문제는 회사측이 이들 요구에 대해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이는데있다.

"임금을 올려주면 줬지 근로자들의 인사.경영권참여는 인정할수없다"는
회사측의 입장이 노조측의 "파업불사"태도와 맞부딪치다보면 교섭과정이
악화되고 감정싸움양상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전자부품을 생산하던 인천지역 A전자의 경우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해오다 근로자들이 인사권참여와 소사장제실시를 요구하자 기업주가
경영을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회사가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다.

서울대학교 신유근교수는 "법이나 제도이전에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근로조건이나 지위에 직접 관련되는 인사.경영상의
문제는 근로자들의 요구가 정당성을 가질수있으나 그렇지않을 경우에는
요구를 자제해야한다"고 충고한다.

3D업종에서는 근로시간의 축소문제도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이다.

"노조에서 평소 주42시간 근로제를 요구하나 무리다. 공휴일 조합원
총회시간등을 제외하면 순근로시간은 36시간밖에 안된다"(오광언
대우자동차이사)

"매년 적자가 발생할 정도로 회사경영여건이 어려운데도 주40시간근로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현대정공 임명섭 노사협력실 과장)

이처럼 무리한 요구들이 "조합원총회"등 집단화된 논리로 전개될 경우
교섭은 더욱 심각해진다.

노사교섭대표들간에 잠정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조합원총회에서 부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노조규약의 상당수가 교섭체결권을 조합원총회의 의결사항에
포함시켜놓고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동공업의 경우 5월부터 두달넘게 노사간 교섭을 거쳐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으나 조합원총회에서 부결됐다.

따라서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고말았다.

창원지역 효성중공업도 지난해 노조교섭대표들의 체결권문제로 무려
다섯달동안 본협상에 들어가지못했다.

"권한을 위임받은 교섭대표들이 몇달간에 걸쳐 애써 합의한 내용들을
간단히 백지화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소모적이다"(효성중공업 김동식이사)
라는 회사측의 주장때문이었다.

요즘들어 이같은 "체결권"시비는 점점 늘어나고있는 추세다.

이에따라 협상대표들의 "교섭권과 체결권"이 동시에 인정돼야한다는
의견이만만찮게 제기되고있다.

단국대학교의 이규창교수는 "교섭의 효과가 근로자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조합원총회가 필요한지는 모르나 단체교섭의 의미가
반감된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다"며 "또 집단논리라는 것이 "목소리가
큰"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반드시 옳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판례도 교섭대표들의 체결권을 인정해야한다는 방향이다.

지난 93년4월27일 대법원은 S사노조가 "창원시장"을 상대로 낸
"단체협약변경명령취소 청구소송"상고심에서 "단체교섭안이 비록
조합원총회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조합대표자는 노동조합법 제33조등에
의해 단체협약체결권을 가지므로 교섭체결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시,
원고(노조)패소 판결을 내렸었다.

지방노동사무소의 행정지도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이뤄지고있다.

그러나 선뜻 노조규약을 바꾸려는 사업장은 많지않다.

구미노동사무소의 이영재근로감독과장은 "노조집행부가 차기선거와
노조내반대파를 의식하기때문에 쉽지않다"고 실정을 토로했다.

<특별취재팀>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