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사라진 산에 토끼들만 남아 서로 자신을 뽐내고 있는 상태"
"모래시계"가 끝난 뒤의 방송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어느 방송
관계자의 표현이다.

"모래시계"가 남긴 공백을 메우고자 방송 3사는 서둘러 3.1절 특집물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특집물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

먼저 KBS는 창사특집극 "땅울림"(이수재 극본,윤흥식 연출)과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제주해녀 항쟁기"(김기표 연출) 2편을 준비하고 있다.

"땅울림"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의지의 인물 김정호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기획된 드라마.

김정호가 대원군에 의해 옥사당했다는 기록은 일본이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허구로 만들어낸 것임을 보여준다.

김정호역에는 김영철,부인역에는 정애리가 출연하고 이경심,견미리등
중견 탤런트들이 연기대결을 벌인다.

"제주해녀 항쟁기"는 1932년 1월 북제주군구좌면(지금의 구좌읍)일대에서
일어났던 어용해녀조합에 대한 해녀들의 항쟁비화를 소개함으로써 우리민족
의 독립정신을 재조명한다.

또한 당시 해녀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되짚어봄으로써 사라져가는 해녀들의
역사적 위상도 함께 상기해본다.

MBC는 주연을 맡았던 가수 심신이 대마초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한동안
삐걱거렸던 드라마 "노래만들기"(이찬규 극본,이재갑 연출)를 3.1절 특집극
으로 내보낸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대중음악 표절행위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중의 우상 한요섭역은 심신대신 뮤지컬배우
남경주씨가 맡아 열연한다.

SBS는 특집다큐멘터리 "소설가 한수산의 쿠바노 코레아노"(조한선 연출)와
특집극 "꿈꾸는 초인"(권인찬 극본,이강훈 연출)2편을 내보낼 계획.

"소설가 한수산의 쿠바노 코레아노"는 1921년 이래 멕시코 사탕수수농장의
혹사를 견디다 못해 쿠바로 이민간 한인들이 살아온 역사와 현주소,가슴에
응어리진 조국에의 그리움을 소설가 한수산씨의 말을 통해 들어본다.

"꿈꾸는 초인"은 로바다야키와 스시를 즐겨 먹으면서도 정신대이야기만
나오면 주먹을 불끈 쥐는 우리민족의 양면성을 통해 우리에게 일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새롭게 느껴보는 드라마.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