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의리를 목숨삼아 살아갑니다"

작전쪽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첫마디는 의리를 중시
한다는 얘기다.

작전이 극성을 부릴 때는 어김없이 장세가 약세를 보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작년3-6월때나 10월이후의 중소형 개별종목들이 작전의 도마위에 올랐을
때에도 시장은 약세기조였다.

대형주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타 매집이 손쉬운 종목들이 튀곤 했다는
반증이다.

한창 시세를 조종해 주가를 올리고 있던 차에 작전하는 동지들을
배반하고 보유물량을 혼자서 처분해 버린다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게
된다.

일순간 작전은 깨지고 물량을 털어버린 사람이야 한몫의 투자수익을
챙기게 되겠지만 동료나 작전가에선 배신자로 낙인찍혀 설땅을
잃어버린다.

그래도 소리소문없이 배신자는 나오게 마련이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광약품의 경우에도 박용우씨는 동료들 몰래
해당주식을 팔았고 김용복씨도 그랬다.

이른바 " 찡"매매를 자행했다는 말이다.

이말은 제등(조징)이라는 뜻의 일본말이지만 우리증권가에선 그렇게
불리고 있으며 남의 앞잡이가 되거나 남보다 먼저 일을 벌인다는 뜻이다.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실패하고마는 작전들도 있다.

작년중반께 작전종목의 명세서에 올랐던 H기계.S증권 모지점의 Y차장은
은행권의 유명한 펀드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종목의 주식을 얼마간 매집해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수
있느냐고. 보험권도 끼고 투신사의 펀드매니저도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을 덧붙였다.

Y차장은 기관을 상대로한 앞으로의 영업관계등을 고려해 선뜻 동의했다.

그러던 어느날 종합증권정보단말기(V2)를 지켜보던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기한테는 한마디 연락도 없었는데 누군가가 대량매물을 내놓은 것이다.

"앗,작전이 끝났구나"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도 서둘러 매도해버렸다.

이어 은행권에서 왜 팔았느냐(배신했느냐)고 항의가 들어왔고 그는
사실대로 설명해줬다.

나중에야 투신권의 담당펀드매니저가 바뀌면서 새로온 주식운용역이
"이렇게 수익좋은 종목을 여태 그냥 두었다니"하면서 매도에 나선데서
발단된 것으로 확인됐고 작전은 끝났다.

그래서 혈맹작전까지 등장하고 있다.

작년3-5월중 태양금속을 대상으로 작전에 나선 대형D증권 신촌지점의
L차장등 5-6명의 세력들은 작전개시에 앞서 혈맹서약식을 가졌다.

약정을 접어두면 처자식을 거느린 그들이 손가락을 찢으면서까지 끝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말자고 굳게굳게 다짐했다.

시세조종의 수단도 다양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심동체로 움직여야
하는 이들 작전세력에겐 의리가 중요한 만큼이나 배반의 가능성을
시시각각 챙겨야 하는 부담도 크다.

거래가 활발한 듯이 꾸미려고 같은 사람이 매수주문과 매도주문을 내는
가장매매야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 주고받는 통정매매나
분할매수 종가관리등의 전술이 어느 순간에 뒤틀릴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신설D증권의 양종모전지점장의 경우 지난92년말부터 제일엔지니어링
주식에 작전을 벌이면서 32회에 걸친 통정매매를 감행했고 공모자들이
약2만주의 물량을 매집했다.

못미더워도 일단 작전에선 믿어야만 하는 이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