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표 < 딜로이트 & 투쉬 파트너 >

영국 금융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수있는 베어링사의 파산은 또다시
파생금융상품( financial derivatives )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금융인인 소르스는 일본 엔화선물거래로 6억달러를 잃었고
프록터 & 갬블사는 이자율선물거래에서 1억5,000만달러를 잃었다.

증권사인 키더 피바디사는 공채선물거래에서 3억5,000만달러의 손실을
낸끝에 다른회사에 흡수되고 말았으며 캘리포니아주 오랜지군은
이자율선물거래가 잘못되어 파산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2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베어링사가 일본의
닛케이 증권시세지표 선물거래로 파산한 것이다.

지난해 수많은 기업이 파생상품거래로 인하여 엄청난 손실을 입고
도산하는 케이스가 많았으므로 이제 파생상품이란 말은 도박이란
말처럼 인식되어 나쁜 이미지를 갖고있다.

그러나 파생상품은 오늘과 같은 국제화시대의 다국적기업에 없어서는
안될 상품이며 따라서 미국의 500대기업은 이를 매일 사용하고 있다.

파생상품의 규모도 액면가치로만 볼때 미국 국민총생산의 4배가
넘는 물경 24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있다.

미국에서 파생상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것으로 알려진 회사는
머크제약회사이다.

머크제약은 총매출의 반정도가 외국으로의 수출이다.

80년대중반 미국의 달러화가치가 계속해서 올라갈때 머크는 엄청난
환차손을 감수해야했다.

수출시점에서 기록된 외화 받을어음이 만기가 되어 현금이 되어
들어올때는 달러가치가 오른만큼 적은 달러화가 되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발생한 손실만도 무려 9억달러에 달하였다.

머크는 수출시점에 벌어들인 외화를 곧바로 달러화로 바꾸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아직 수출대금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환전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외화옵션거래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머크는 지금 35억달러어치 외화옵션거래를 함으로써 환차손을 컨트롤하고
있다.

파생상품의 이용이 국제거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금융테크닉이 된것이다.

또 다른 예로 시어스 로벅은 110억달러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였다.

발행당시 시장에서 원하는 대로 변동금리에 의해 이자를 지급하기로
하는 변동금리 회사채였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액수의 사채에 대한 이자가 얼마나 될것인지
미리 예견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금리의 변동에 의존하고만 있는다는것은
신중한 기업경영이라 할 수 없다.

시어스는 이 사채에 대한 이자부담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자율 스와프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이자부담 한도액을
고정시켰다.

반대로 채권자나 투자가의 입장에서,고정된 이자수입을 원하는데
변동이자율 채권을 갖고 있다면 이자율 스와프를 통해 이자수입을
고정시킬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파생상품이 없다면 기업이 위험부담을 줄이고 소득을 미리
확정시킬 방도가 없는 것이다.

파생상품의 사용은 이제 모든 대기업의 재정담당 중역에게 당연히 마스터
해야할 금융테크닉이 되었다.

지난해 포드자동차가 파생상품을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액면가치( notional value )451억달러어치를 거래했고 다음으로는
GE가 270억달러,GM이 255억달러,IBM이 181억달러,그리고 폰퐁이
117억달러어치의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이처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즉 헤징으로서)반드시 필요한 파생상품
거래가 마치 도박이라도 되는 것 처럼 악명이 붙은것은 거래담당자들이
욕심이 발동해서 그야말로 도박을 하기때문이다.

예를들면 수출대금 결제를 마르크화로 받게 되었다면 마르크가치의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마르크.달러 스와프를 하면 헤징이 되는데
거래담당자가 수출대금 결제도 없는 상황에서 마르크화가 반드시
오를것이라고 점치고 스와프계약을 하는것이다.

예상대로 마르크가 오르면 맨손으로 돈을 벌겠지만 마르크가 내리면
도박에 진것처럼 생돈을 갖다바쳐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래담당자들은 늘 파생상품거래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겨 이자율이 오를것이라든가 엔화가 내릴것이라든가 하는 베팅을
하고싶은 욕심이 생기고 눈앞에 쉽게 돈 벌수있는 기회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어 사고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베어링의 리슨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는 파생상품 거래를 규제하고 제약할것이 아니라 회사내부
컨트롤을 강화한다거나 계약내용을 재무제표에 공개토록해서 거래행위를
좀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내부 컨트롤 점검이나 재무제표
공개내용과 범위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맡아야한다는 논의도 나오고있다.

이와같은 앞으로의 방향은 연방준비은행과 10개국 중앙은행간의
의견교환에서도 확인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물거래와 파생상품거래에 관한 기업인들의 인식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