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의 손이 습인의 오른발 복숭아뼈를 슬그머니 움켜쥐자 습인이
몸을 뒤틀며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련님,도련님,아 아 아" "왜? 어디 아프냐?" 보옥이 습인의 반응이
재미가 있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아니,아픈 것이 아니고. 저어,그 대련의 뜻이 어떻게 되는지요?"

습인도 보통내기가 아니라 보옥의 장난기어린 대꾸를 잘 받아 넘겼다.

"그러니까 그건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세계,없는 것이 있는 것을
압도하는 세계,그리하여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없는 세계,없는 것과
있는 것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말하고 있는 거지.그런 세계가 바로
태허환경(태허환경)이므로 그 입구에 그런 대련이 붙어 있는 거지"

"그렇게 설명해도 모르긴 마찬가지이군요. 하긴 우리 인생이 몽중몽몽
이라 했으니 어느 것이 가짜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지요"

"몽중몽몽이라?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말은 장자가 한 말인데, 너도
문자를 쓰느냐?"

이번에는 보옥이 습인의 다리 각반을 벗기고 전족이 된 작은 발을
만지기 시작했다.

발에는 버선 대신 하얀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발을 남자에게 내어맡긴다는 것은 몸 전체를 내어맡기겠다는 의사표시와
같으므로 습인은 이래서는 안되는데,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는 장자를 알아서 그런 문구를 쓰는 것이 아니옵고,요즈음 아이들의
노래중에 몽중몽몽이라는 말이 나와서 알게 된 것이지요"

습인은 발에서 번져 나오는 쾌감으로 사타구니가 당기는 듯하여 이맛살을
찌푸리기까지 하며 간신히 말을 하였다.

"정말이지 나는 꿈속의 태허환경에서 또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꿈은 가짜냐,진짜냐? 없는 것이냐,있는 것이냐?"

"그 대련대로 한다면 꿈은 가짜이면서 진짜요,없는 것이면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과연 습인은 우리 집안의 시녀들중에서 제일 똑똑하구나" 보옥은 이제
두 손으로 습인의 몸을 구석구석 더듬어 나갔다.

꿈속에서 만져본 가경의 몸과 비교를 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태허환경이라 쓰인 문을 지나니 궁문이 나오고 그 위에도 얼해정천
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더구나. 그리고 또 그 양옆에 대련들이 적혀
있었지"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