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5월 세상을 경악케 한 서울한약사회 회장댁의 존속살해사건은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동기야 어떠했든 부모를 흉기로 무참히 난도질한 한 젊은 패륜아를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낭패감마저 들게했다.

문민정부 출범직후 자식문제로 각료직을 물러나야 했던 한 정치인의 사연은
또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자식으로 하여금 외국국적을 취득시켜 특혜를 누리게 하는 사회 저명
인사들의 행태를 단순히 대학입학의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방편으로만 치부
하고 말아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아래 위를 가릴것없이 이 사회가 "도덕불감증"에 걸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제 우리사회는 60~70년대의 "한강의 기적" 성취후 경제부흥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세끼 밥걱정을 해야할 만큼 심각한 "절대적 가난의 시대"는 지나가고 그
다음의 정치.경제적 선진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정신적 도덕적 선진국가를 만들어야 할 절박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때다.

이러한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보다 가치롭게
살수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물질적 풍요보다 도리어 가난했지만 마음이 따뜻
하고 즐거웠던 지난날이 더욱 그리워지지는 않는가.

착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도대체 우리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다시 가지게 되고 그 해답을 찾아야 함을 절감한다.

공자는 일찍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잔다해도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다"고 하면서 "인간이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여서는
인간이라 할수없고 개인이나 사회에 도덕이 없으면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짐승의 사회"라고 하였다.

토머스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고
말하였거니와 우리의 오늘의 부도덕한 사회가 약육강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짐승의 사회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검토해볼 일이다.

도덕은 서양에서도 근래 독일의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목적적 의지"를
의미하는 선의지와 "도덕법칙"의 주장등 도덕론이 있었지만, 도덕이란
말자체가 고대 인류의 정신문화 연원지인 동양과 우리나라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우리민족의 몸 깊숙이 도덕이 배어있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이미 절정에 올라 쇠퇴의 징조들이 곳곳
에서 나타나고 있는 서구문명의 뒤를 이을 미래의 문화를 동양의 도덕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거니와, 우리 동양의 정신문화의 상징이라 할
"도덕"에다 서구의 모범 정치형태라고 할 "민주정치"를 접목.승화시킨
"도덕적 민주주의"를 동양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가 가장
모범적으로 먼저 실현하여야 하겠다.

이처럼 도덕이 물흐르듯 넘쳐흐르는 "도덕사회" "도덕적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서야 한다.

그동안 부산광역시 교육목표를 "선도덕 후학술개혁"에 두고 추진해
왔거니와 앞으로는 이를 범국민적으로 확대하여 전개하자.

국민 도덕성 회복만이 우리가 참된 선진국이 되는 바른 길이라 보기 때문
이다.

정희근 < 부산시 민락동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