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4년2월의 일이다.

경부고속도로 기흥 톨게이트에 갑자기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삼성전자 직원들이었다.

손에는 삽과 가마니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톨게이트에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 이르는 길을 허겁지겁
포장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흙과 자갈을 가마니로 날랐다.

그러면 다른 편에서는 삽으로 다지는 식이었다.

그래서 한나절만에 작업을 끝냈다.

이들이 맨손으로 길을 포장한 이유는 이랬다.

이날은 삼성전자가 도입한 반도체 장비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돼있었다.

장비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운송차량을 보냈다.

그러나 그 뒤에 중요한 사실이 발견됐다.

톨게이트부터 공장까지의 길이 비포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반도체 장비는 진동에 약하다.

운송중 심하게 흔들릴 경우 고장나기 십상이다.

공장문앞에서 비싼 장비가 고물이 되도록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삼성의 전직원들은 분초를 다투며 길을 닦은 이유를 알만하다.

삼성반도체의 시작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