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보니 올해가 필자의 나이 회갑이 되었음을 알고 "그간
흐르는 세월을 나는 잊고있었나" 하는 착잡한 마음 지울수 없다.

작지만 제조업을 30여년간 경영하면서 시간보다 더 아깝고 귀중한
것이 없음을 나이가 더해 갈수록 더욱 그 느낌을 더해 가게된다.

인생이 늙어가는 것은 필연적일진대 과거에도"늙은 나의 모습은
어떨까"하고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다.

"아름답게 늙는 지혜" "품위를 잃지않고 늙는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했다.

젊어서는 등산 낚시 카메라 오디오 골프 스키등에도 심취해 보았지만
내직업에 충실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주위, 가족과도 즐길수
있는 취미는 아니었던 생각이 든다.

83년 가을쯤인가 우연한 기회에 집사람과 함께 동숭동아트홀에서 가서
올겐연주회를 감상하게 됐는데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과 박자, 리듬,
음색이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하여 그자리에서 반하고 말았다.

"나라고 못하라는 법이 없겠지"하는 마음에서 다음날 이탈리아제
중급올겐을 구입하여 집으로 가져오니 집사람이 깜짝 놀라지 않는가.

당장 종이에 도레미를 써서 건반에 붙이고 악보에도 한글로 도레미를
연필로 토를 다는등 독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열의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두자니 가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었다.

결국 종로2가 소재 음악학원을 찾아가 수강신청을 하니 접수하는
여직원이 "아저씨, 올겐 배워서 업소에 나가려고 하시죠" 하는게
아닌가.

속으로 놀라기도 했고 이해도 할수 있을것 같았다.

그뒤로 열심히 배워 서툴기는 하지만 올겐앞에 앉으면서 이 악보는
오늘 몇시까지 마스터해야지"하고 스스로 다짐하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한곡한곡 넘어갈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 그리고 젊어지는
것만 같은 자기도취감으로 시간가는줄 모른다.

회갑엔 안되겠지만 내나이 칠순때는 올겐연주회를 겸한 자축연을
갖고자 다짐해본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참으로 고상한 취미가, 그리고 품위를 지킬수
있는 생활문화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권하고싶다.

오늘의 숙제는 "탱고여왕벌"이다.

이마 이곡이 끝날때쯤이면 부엌에서 즐겨주고(동락) 박수쳐 주는
단 한사람의 동호인이 있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