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개혁의 돌풍에는 몸을 사리고 세계화추진은 개념논쟁으로
머뭇거리며,규제완화는 절차간소화 정도로 때우고 정책일관성을
이유로 회피하면서 보장된 정년이나 기다리는게 우리의 행정관료라는
생각이 아직도 사업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있다.

최근 공보처가 만든 "정부는 이렇게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자료집(본지
23일자 2면 보도)은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살기좋고 사업하기
쉬운 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선진국과
경쟁국,심지어는 후발개도국에 비해서도 우리 기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규제의 올가미에 얼마나 많이 시달리고 있으며,각종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집단에 의한 규제완화가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가를
절감하게 한다.

물론 문민정부는 정부주도 개발연대의 골깊은 규제와 왜곡된 지원을
바로잡기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앞서가는 나라가 있는한 우리는 행정서비스의
국제경쟁에서 계속 밀리게 된다.

규제완화의 핵심은 "생활과 경제에 봉사하는 행정서비스"체제의
구축이다.

국민과 기업을 고객으로 높이고 대접하는 행정관료가 되는 것이며,적은
예산으로 최대의 만족을 창출하는 효율적인 정부조직을 만드는 것이며,개인
의 창의와 기업의 혁신이 펄펄 살아나는 경쟁력을 키우는 국가경영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는 규제완화에는 이제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첫째 규제완화는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규제를 받는 피규제자의 입장에서 대상을 고르고 실천해야 한다.

즉 규제완화의 우선순위는 집행이 용이하거나 건수를 늘리기 쉬운
것부터가 아니라 규제완화의 성과가 높고 수혜대상이 많은 쪽에서
부터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규제완화의 범위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규제하는 관료만 알고 막상 규제를 받는 국민과 기업이 모르는 규제는
그 실효성을 정지시켜야 한다.

공개된 입법절차에서는 그 내용과 범위가 예외조항으로 은폐되고
행정집행절차로만 명시되어 투명성을 잃은 규제는 행정관료의 자의적
권력남용을 양산하고 관료부패와 행정부조리의 원인이 된다.

수도권 인구집중억제나 통화량 목표치관리와 같은 정책적 규제는
행정의 질을 떨어뜨린다.

셋째 규제의 내용은 국제규범을 수용하고 법체제내에서의 일관성을
견지하는 집행의 투명성과 절차의 명료성을 지녀야 한다.

규제완화의 성과를 담은 "자료집"은 한편으로 정부가 규제의 실상을
알면서도 완화를 안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는 의지가 문제이며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