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에 세일상품이 공전의 인기를 끌면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은행마다 너나없이 고수익상품을 내걸고 고객유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보수적이었던 은행들이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세일상품이란 일정기간을 정해놓고 금리를 우대해주는 방식이다.

예금금리는 높게 적용하고 대출금리는 예금실적에 따라 낮게 해주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일정기간동안 하는 바겐세일과 하등 다를게 없다.

유통업계에서 불기 시작한 가격파괴의 바람이 금융권의 금리파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초 세일상품은 일부 은행에서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고객에게 서비스도 하고 예금도 유치할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이 기대이상으로 좋았다.

"왜 예금을 더 받지 않는냐"는 항의가 나올 정도였다.

은행으로선 기간을 연장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이젠 세일상품이 은행가의 유행상품으로 자리를 굳히는 상황이 됐다.

이젠 은행치고 세일상품이 없는 곳이 없다.

금리파괴형 고수익상품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작년말 금리자유화조치로
1년이상 정기예금등의 금리가 자유화된 영향이 크다.

여기에다 때맞춰 증시침체로 증시에서 빠져나온 자금과 공모주배정비율인하
로 은행에서 이탈한 공모주청약예금등이 세일상품으로 유입됐다.

최근 조직감축으로 직장을 그만둔 명예퇴직자들의 퇴직금도 한몫 거들었다.

덕산그룹 부도사태도 이들 상품의 인기를 높이는데 일조를 했다.

덕산부도로 흔들리고 있는 제2금융권보다 안전한 은행을 찾는 예금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충북투금에 예금했다가 인출정지로 곤혹을 겪는 사례도 있어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이들 자금이 금리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점을 들수 있다.

조금이라도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을 좇아 투자대상을 바꾼다.

이런 점에서 세일상품의 고금리는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금리가 기존의 정기예금(9-10%)보다 3-4%까지 높아 제2금융권 상품과도
경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세일상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

동화은행의 "편리한 대출통장"이 그것이다.

이 통장을 이용해 각종공과금을 자동납부할 경우 1백만원까지 즉시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예금규모가 큰 고객에겐 대출이자도 깍아 줬다.

백화점 세일처럼 은행들의 세일상품은 인기를 끌었다.

단기간에 거액의 예금을 유치한다는 점에서 은행으로선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었다.

상업은행이 연 12.5%의 이자를 지급하는 사은적금의 경우 한달간의 세일
기간중 모두 6만4천여명이 몰려 7천억원에 육박하는 계약고를 올렸다.

은행측에서 고금리보장이 너무 부담스러워 이 적금의 판촉을 중지할 정도
였다.

세일상품이 인기를 끌자 은행들은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당장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니 다른 수가 없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거의 매일처럼 새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상품은 크게 3종류로 나누어 볼수 있다.

기존 상품에 2-4%의 금리를 더 얹어주는 정기예.적금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고객에게 확정금리를 주는 신탁상품과 예금액이나 예금기간에 따라 금리를
차등해주는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세일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은행들의 상품개발경쟁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고객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예금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예컨대 평화은행의 스포츠예금이란 이색상품을 사례로 들수 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우승팀을 맞추면 보너스금리를 추가로 지급하는
"평화스포츠예금"은 은행예금상품과 스포츠를 연계한 최초의 상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 상품개발경쟁은 은행의 모든 업무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예금이나 적금상품은 물론 대출 외환 환전 등에서도 금리나 수수료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 잇달아 도입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런 상품개발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건 물론 올들어서 부터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됐다는게 은행들의 얘기다.

금융자율화 금리자유화가 벌써부터 진행된 탓에 세계적인 추세로 정착됐다
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적금의 할인대출이 일반화된 상태다.

일본에서도 직장인들의 보너스가 나오는 달에 한시적으로 금리를 올려주는
상품이 많다.

금리파괴현상은 은행고객들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거에 비해 예금금리는 높아지고 대출금리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은행간의 경쟁이 소비자들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에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고금리에 입맛을 들인 고객들이 기존 상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추세다.

까다로워진 고객의 구미를 맞추려면 고금리상품을 계속 내놓지 않을수
없게 됐다.

더군다나 고금리를 계속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은행들은 고금리를 적용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회사채등 고수익을
낼수 있는데 자금을 운용해 왔다.

채권수익률이 높을 때는 소폭이나마 마진을 남길수 있으나 그나마 떨어지면
역마진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회사채유통수익률이 14%대로 떨어지자 은행들이 고금리상품의 세일
기간을 단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서도 이런 사정을 읽을수 있다.

결국 고금리세일상품은 은행경영에 미치는 마이너스효과를 가져올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올들어서 본격화된 금리파괴 현상은 앞으로 은행은 물론
금융계에 불어올 변화의 방향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금리나 서비스면에서의 경쟁이 더 심화되면서 특정층의 고객을 우대하는
전문은행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