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인품에는 다섯등급이 있다. 선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실새,
선한 도를 스스로 깨닫는 통달, 큰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말에는
투철한 소품, 작은 말은 버리고 큰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기, 큰 말을
들어 크게 쓰고 작은 말을 들어 작게 쓰는 불기가 그것이다"

9세기의 실학자 혜강 최한기는 저서 "인정"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
즉 "치인술"을 논하면서 세상의 인품을 이렇게 다섯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사람들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질새"에 속하는 사람인데, 이들은 부귀빈천
등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선한 말을 듣지 않는 부류의 꽉 막힌 사람들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소기"는 편벽된 소견을 가지고 간신히 제 몸을 보전
하는데만 바쁜 사람을 말한다.

그 다음이 "통달"로서 이 부류는 견식이 박힘없고 언론이 분명하며, 일을
하는데도 빈틈이 없고 이웃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지낼줄 안다.

"대기"는 드물지만 이들은 큰 일을 맡고 큰 업을 이루는 일은 감당할수
있으나 세세한 사무를 맡기에는 합당치 않다.

도덕과 재능이 뛰어나 도를 행하는 "불기"의 사람은 더욱 얻기가 쉽지 않아
범인은 이들을 가려내기조차 힘든다.

혜강은 23년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렇듯 "불기" "대기" "통달" "소기"
"질새"의 순으로 인품의 등급을 매겨 놓았다.

특히 그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경륜, 학식보다 기품이나 심덕을 중시
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사람은 그저 알기도 힘들지만 그사람됨됨이를 아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매일 각양각층의 사람들과 만나고 사귀고 거래를 하면서 그들을 낱낱이
평가하며 사귀기도 어렵거니와 그럴 여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4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천 타천으로 2 3,000여명의 후보들이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다.

시,도 단체장 공천작업에 들어간 정당들은 수만 많았지 당선될만한 인물이
적은 탓인지 인물난으로 고심하는 빛이 영력하다.

"소동령"이란 별칭이 붙은 서울시장후보의 경우는 더 심한듯하다.

혜강의 "치인술"을 따라 후보자의 경륜이나 학식대신 기품과 심덕의 원천인
인품을 보고 사람을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기"나 "불기"의 인물을 뽑기는 어렵다고 해도 "통달"의 정도는 뽑아야
겠는데, 그런 인물을 뽑으려면 유권자들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높아져야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