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습인은 홍루몽 제일곡의 노래가 바로 보옥의
운명을 예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금과 옥의 인연이란 보채와 보옥의 인연을 가리킬 수도 있고, 나무와
돌의 인연이란 대옥과 보옥의 인연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왜 그런고 하니 보채의 보가 금이요, 보옥의 옥이 옥이요, 대옥의
성인 임이 나무요, 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나온 것이 옥돌이기
때문이었다.

금과 옥의 인연이 낫느니 나무와 돌의 인연이 낫느니 하는 말들이
오갔다고 하니까, 보옥이 보채와 대옥 둘중 어느 하나와 혼인을 하게
되겠지만 누구랑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보옥이 누구랑 혼인을 하게 되든 결혼생활에서 만족을 얻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보옥 앞에서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제이곡도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운명을 노래한
것 같은데, 물속의 달이니 거울속의 꽃이니 하는 말들은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더군"

습인이 생각할때 모르긴 해도 제이곡은 보옥과 혼인을 하지 못한 여인의
슬픈 운명을 노래한 것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 여인이 보채인지 대옥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물속의 달이니 거울
속의 꽃이니 하는 것은 도저히 다다를수 없는 환상과도 같은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나머지 곡들의 가사도 비슷비슷한 내용들이었는데, 마지막 제십이곡은
금릉 십이채 정책 마지막 그림을 떠올리게 하더군"

보옥의 얼굴이 사뭇 긴장되면서 습인의 속옥을 하나 더 벗겼다. 이제
한겹의 옷만 벗기면 습인의 상체가 맨몸으로 드러날 판이었다.

습인은 두팔로 젖가슴께를 가리며 금릉 십이채 정책의 그 마지막 그림을
생각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대들보에 목을 맨 여인 말이군요. 홍루몽 제십이곡에서는 어떻게
노래하던가요?"

"그 제십이곡 제목이 호사종이더군. 좋은 일도 끝장이다. 다시 말해
정욕을 채우던 기쁨과 쾌락도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는 뜻이겠지.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더군"

보옥이 그 곡조를 떠올리는지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읊어나갔다.

"텅 빈 대들보 봄도 다 지나가고 먼지만 날리네. 정욕은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고 용모마저 달같이 아름다워라. 이것이 곧 패가망신의
원인이 되었구나"

보옥의 노래를 들으니 역시 심각한 불륜이 드러나 여인이 대들보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 틀림없는 듯 싶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