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들어 한국기업들의 중국진출은 중국정부의 대한반도, 나아가 정치,
경제면의 우선순위결정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80년대만 해도 중국에선 경제가 그렇게 주요 이슈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비중이 경제적 비중을 앞지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수출드라이브 성격의 외국투자도입정책을 구사한 중국의 입장에서
이제 "세계속의 중국"이라는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됐다.

90년대에 들어 중국정부의 가장 큰 경제정책 변화는 역시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가입과 관련된다.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재로서도 중국은 여전히
대외적인 장애요인을 안고 있다.

"청산계정방식은 이점에서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관행으로 지적됐다.
세계무역이 "자유 개방화"를 모토로 움직이는데 반해 이 방식은 지극히
사회주의적으로 세계무역환경의 변화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권오홍
장한신식 대표)

더우기 지난 87~93년말까지 누적된 중국의 대북교역 적자가 17억달러에
이르러 중국으로서도 더이상의 "지원무역"을 할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 92년부터 공공연히 북한에 대한 청산계정방식의
중단 문제를 거론했다.

원유에 대해서도 수출가격을 인상, 국제가격을 표준으로 하는 거래를 시작
했다.

석탄,코크스등 에너지및 군수물자들에도 현금결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커다란 변화에 직면한 북한은 무역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들어 북한 무역정책엔 커다란 변화가 일고있다.

우선 대외무역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자세다.

"국제시장의 경기변동을 파악,결제형태와 상품가격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여러 형태의 결제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대외신용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른바 "신용제일주의"가 구호로 등장하고 있다"(정영록
주중한국대사관 경제연구관)

무역의 다각화에 대한 의지는 가공무역이나 제3국무역, 바터무역,
변경(국경)무역, 협동무역등 다양화를 위한 시도와 함께 일부 국가에 편중된
무역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품수출면에서는 철강재 비철금속 마그네샤 크링커등 원자재에
대한 2,3차 가공품및 기계 전자 경공업제품등 제조업의 수출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구소련의 붕괴와 형제국이었던 중국과의 내밀한 무역분쟁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북한의 시도는 무역조직의 개편과 무역상사들의 활동증대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무역업무 권한의 지방이양 현상도 주목된다.

정무원 산하 각 위원회와 부,도 행정단위등으로 무역업무권이 넘어가고
기업들에도 책임무역 수행을 강조하는 현상도 일고 있다.

순망치한, 즉 입술및 이빨과 같았던 중.북한관계는 이처럼 최근의 세계
경제환경의 변화에 여지없이 흐트러지고 있다.

정치측면에서 볼때 한.중관계는 경제라는 복선을 깊숙히 깔고 진행되어
왔다.

그에반해 북.중국 관계는 지금까지 정치라는 기반만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깨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은 크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집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중국지도부도 미.북한
관계를 "당사자간의 문제"로 인식한다고는 하지만 내심 "배후의 적"은 둘
수 없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같은 맥락에서 양국관계는 가공무역 중계무역 변경무역 원조성교역등이
복합된 다양한 교역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중국 동북3성지역의 경제개발 확대와 맞물린 소비수요들과 북한측의
기초물자구입원으로써의 위치등이 비록 이해관계가 불일치되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박찬혁 KOTRA 북경관장)

이는 한편으로 중앙정부차원의 무역보다는 한단계 격하된 지방정부 혹은
민간차원의 교역으로 전이되는 과정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

"변경무역은 이점에서 중.북한 경협의 새로운 탈출구로 인식되고 있다.
두만강 압록강 연변의 지역들과 북한간의 변경무역은 과거 단순 바터성
거래의 틀을 벗고 점차 무역합작성격을 띄고 있다. 여기에 한국기업의
동북3성 진출과 맞물려 중국을 통한 남북한의 거래도 증대되고 있는 추세다"
(구성진 주중 한국상회 사무국장)

요령성성장이 2월초 북한을 방문, 요녕성과 북한간의 가공무역등 각종무역
을 확대하는 부분에 심도있는 협의를 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요녕성측은 이미 진출한 한국기업과 북한기업간의 협력에 대한 부분도
언급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방정부차원에서 남북한 관계를 이용한 투자유치의 증대등은 상당한
호재임에 틀림 없다.

이처럼 중.북한관계는 과거 맹목적인 순치관계를 벗어나 "경제교역"이라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변하고 있다.

그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중국경제의 발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기업들이 이미 체득한 무역에 대한 민활성과 함께 북한기업들의 접근이
혼재되어 있다.

여기에 한국기업이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북경=최필규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