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은 국경없는 경제, 무한경쟁시대의 본격적
전개를 말해준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국경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크고 작은 무역분쟁이 지속
되고 있다.

WTO는 4일 일본의 통상정책이 과거의 쌍무적 무역협정방식에서 탈피하여
다자간 무역체제를 향해 개선되고 있는지에 관한 이틀간의 집중적 검토작업
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에서도 3일 일본이 유럽산 독한 술에 대해 자국산보다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와 관련해 WTO에 제소할 뜻을 비쳤다.

세계 어느나라를 불문하고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나라는 없지만 일본은
그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자국시장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관행과
규제절차를 존속시키고 있다는게 세계각국의 시각이었다.

달러화는 폭락하고 있고 일본엔화의 강세행진은 계속되고 있는 데도 일본의
무역흑자는 줄지 않고 있다.

94년 일본의 무역흑자는 93년의 1,202억달러보다 늘어난 1,212억달러를
기록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본의 대미 무역수지는 93년의 502억달러에서
94년에는 550억달러의 흑자를 나타냈다.

금년 2월의 무역수지도 114억달러, 대미 무역수지는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48억9,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미국을 비롯한 서구제국이 일본의 무역정책을 보는
눈이 고울리가 없다.

미.일간 통상마찰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미국은 미.일간 무역불균형의 근본적 해소를 위하여 일본에 대해 실질적인
시장개방과 제도개선을 요구해온 것이다.

90년 부시 행정부의 슈퍼301조에 의한 우선협상 대상국지정과 구조조정
(SII)에 이어 클린턴 행정부는 93년에 시작한 미.일 포괄협의를 계속할
예정으로 있다.

이는 일본 경상흑자의 중기적인 감축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지난 3월말 미국과 EU등 주요 교역대상국들의 비판을 불식
시키기 위해 총 1,091개 항목에 달하는 5개년 정부규제철폐안을 마련했다.

수입과 국내 소비촉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규제철폐안은 당초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며 일본정부는 규제철폐라는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외국 기업의 판매기회를 봉쇄하고 가격결정에 개입하는등 경쟁
제한적 정책을 펴고 있다는게 미국과 EC의 평가다.

WTO가 일본의 통상정책을 검토한 것이나 EU가 주세차별에 대해 제소할 뜻을
비친 것은 일본을 보는 서방국가의 시각임과 동시에 일관된 입장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미국은 대일 자동차협상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예컨대 외국의 불공정조치에
상응하는 똑 같은 방법으로 보복을 취할수 있도록 하는 초강격 통상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구제국과 일본과의 통상마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의 시장이 예컨대 미국에 비해 덜 개방돼 있으면 무역수지가 흑자든
적자든 미국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대외통상마찰을 WTO 체제안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대미, 대EU 통상문제를 그때그때의 상황에 쫓겨 서둘러 해결하려 하지 말고
우리 능력에 걸맞는 개방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