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실질 협력관계를 구축키위해 발벗고 나섰다.

금융.기술개발.공정거래등 부문별로 협력을 대폭 강화키로 한 11일의
전경련-기협중앙회 회장단간 합의는 한국 산업을 이끄는 두 블록간의
"상생.공조시대"가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협력장치로 과거의 "돈 몇푼"대신 금융회사설립 기술공동개발 공정거래강화
등 "제도적 장치"를 택한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나라안팎의 경제.산업상황은 더이상 단기적.대증적
협력처방이 아니라 산업체질의 근본적 강화를 위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해졌다는 데 양측의 인식이 모아졌음을 반영한다.

만성적 돈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매출채권을 조기
현금화해 "자금 갈증"을 풀 수 있도록 상호 협력아래 중기전용 팩토링회사를
설립키로 한 것은 이같은 대.중소기업간 협력무드를 단적으로 엿보게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계열화와 거래공정화를 통한 공동이익 증진을
겨냥해 "대.중소기업 협력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간 협력이
종래 지속돼온 대기업들에 의한 "일방통행식.시혜적"차원을 벗어나
상호공존.상생을 위한 수평적 공조를 모색하는 쪽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기업들이 고질로 앓고있는 핵심부품의 수입의존 체질을
탈피할 수 있게끔 중소기업들과 손잡고 "수입부품 국산화 공동개발"을
추진키로 한 것은 중기쪽 역할에 무게를 둔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중소기업간 협력이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는데는 한국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격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부터 닻을 올린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출범으로 해외는 물론
안방시장에서까지 외국기업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하는 상황이 됐다.

중소기업쪽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들도 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중소기업과의
협력강화가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초엔고"가 가세하면서 핵심부품
국산화등 자생적 산업기반 구축이 화급한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다.

규모의 대소를 가릴것 없이 국내기업간 "결속"이 시급해졌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소기업들은 갈수록 기력을 잃어온 게 현실이다.

지표상의 국내경기는 호황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중소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르는등 기업규모에 따른 경기양극화 현상이 심화돼온게 작금의
실정이었다.

부품등 하도급분야에서 중소기업들이 밑을 받쳐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대기업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내부위기로 비쳐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순망치한을 실감한다고나 할까.

이처럼 대.중소기업이 서로의 상황에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단계 고도화된 협력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경쟁력강화 사업을 앞장서 주도해온 전경련쪽에서
가시적인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현실적 압박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소유.경영분리등 일련의 정책사안을 놓고 정부와 편치만은
않은 관계에 있는 전경련입장에선 적극적인 중소기업 지원이외에
대정부관계를 개선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속사정도 엿보인다.

"WTO체제 아래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은 힘들게
됐다.

이젠 그 역할의 일부를 대기업들이 맡을 차례다"(전대주전경련전무)는
얘기에서 그런 측면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속내야 어쨌건 "초엔고속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국내 대.중소기업관계
가 명실상부한 동반자를 지향해가고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이날의 간담회는 그런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