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

미국의 자동차 문화에서 우리와 다른 두가지를 느낄수 있었다.

하나는 자동차행정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의 친절이었다.

22년전 미국의 서부로 유학을 갔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선배 차를 타고 중고차를 사러 이마을 저마을을
다니다 보니 멋진 캐딜락에 "팝니다"라는 마크가 붙어 있고 그 밑에
300달러라고 씌어 있었다.

주인은 40세쯤 돼보이는 남자였는데 10년이나 묵은 차를 미국땅에 처음 온
유학생에게 파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핑크슬립"이라고 불리는 소유권에 서명을 해주면서 나를 "자동차
등록소"에까지 데려가 행정을 대신해 주었다.

행정이라 해야 핑크슬립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세금은 불과 10여달러였다.

그 다음부터는 매년 한번씩 세금고지서가 우편함으로 날아왔다.

우편으로 수표를 보냈더니 번호판 귀퉁이에 붙일 손톱만한 스티커가 날아
왔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행정은 이렇게 간단하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더 효율적으로 뛰어야 그들을 따라다닐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 엄청난 범죄국이지만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증명서
같은 것을 떼어오라고 하는 행정은 없다.

자동차가 크다보니 좁고 꼬불꼬불한 호텔길을 가다가 바퀴가 인도블록에
닿아 펑크가 났다.

비는 내리는데 상황을 처리할줄 모르니 매우 난감했다.

바로 이때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40대 부부가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그 부부는 서로 도와가며 트렁크에 있는 예비타이어를 꺼내 갈아주었다.

깨끗했던 그들의 옷이 비에 젖었고 손에는 기름이 묻었다.

그래도 그들은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또 한번 펑크가 났다.

이번엔 내손으로 바퀴를 갈아 끼울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다섯대나 서주면서 "도와
드릴까요"하고 제안해왔다.

버클리 시내에 들어갔다가 고속도로로 가는 길을 찾을수 없었다.

소리를 쳐가며 옆차에 고속도로 진입방법을 물었다.

그는 설명해 주어도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약 10분간 따라가자 고속도로가 나왔다.

시내운전의 핵은 매너였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는 눈치만 보여도 속도를 미리 줄여주면서 보행자에게
목례를 했다.

갑자기 서면 보행자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들 몇개의 사례는 분명 미담이지만 우리도 착안만하면 충분히 할수 있는
일들이다.

영광에 사는 독자로부터 노란 굴비 40마리를 소포로 받은 적이 있다.

여름 휴가철 속초 횟집에 들렀을때 건네준 명함주소로 생태알 한동이가
고속버스편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이러한 낭만이면 거리의 매너쯤은 얼마든지 가꿀수 있다.

단지 착안을 못해왔을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