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은행,증권,보험 3개의 기존 감독원을 합쳐 금융감독원을 만들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같은 존재라고나 해야할까.

3면에 날을 세운 칼을 들고 태어날 이 태아의 존재에 대해 말이 많다.

"누가 만든 겁니까"

"그 내용이 뭡니까"

"왜 만들었답니까"

"이 시기에 나온 이유가 뭐랍니까"

그다지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의문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궁금한김에 일차 당사자인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장 3인에게 우선 가벼운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정부의 통합안을 알게된게 언제였습니까"

이들의 대답은 "신문발표를 보고 알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불협화음 제거를 위해서라도 각 부문의 책임자인 이들과
의 사전협의가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왜였을까.

따지고 보면 이해가 가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우선 감독원통합문제는 한은법개정과 맞물려 있다.

한마디로 경제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정치적인 문제다.

사안이 미묘할수록 추진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이유는 또 있다.

증권감독원장이 임명된 것은 지난해 7월이었고 은행감독원장과
보험감독원장이 보임된 것은 것은 지난 1월초였다.

따라서 3월에 발표된 통합안은 인사가 있은지 수개월 밖에 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나가달라는 "사직권고"나 다름없다.

"인사가 만사"라고 주장해 온 정부가 하급직관리도 아닌 이들에게 "필요
하면 주어다 쓰고 필요없으면 버린다"는 인상을 주기가 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발표과정은 그렇다 치자.

이번에는 과거에 "통합안을 직접 다뤄본 적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들이 최근까지도 기획원과 재무부의 최고위급 관료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안의 생성과정이나 토론과정에 관여하지 않았겠느냐는 유추는
자연스러운 착상이다.

그러나 답은 "그런 안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챙기거나 활발한 토론에 가담했던 적은 없었다"는 식이다.

이들의 사전인지나 추진하는 부서와의 긴밀한 사전협의 여부가 통합안의
당위나 타당성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3개 기관을 관장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그 내용을
알게되었다면 절차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 수도 있다.

여기저기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교수등 전문가들이 안을 만들고 토론을
오래전부터 해온 것은 사실이나 실무부서나 관계된 기관들간에 광범위한
의견교환이 있었던 흔적은 별로 없다 물론 통합안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통합을 통해 중복된 분야를 일원화하여 인원을 축소하고 동시에
규제를 완화하여 "작은정부"를 구현함으로써 금융분야의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으리라는 총론적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원감축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반대입장에 선 사람들은 은행, 증권, 보험이 그 업무의 성격, 감독대상,
감독목적등이 판이하게 달라, 동일한 기준과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각론을 내세운다.

특히 고객과 은행이 직접 일대일 대면하며 거래가 이루어지는 은행업무의
경우, 신용질서의 확립과와 변제능력에 감독의 관심이 두어지는 반면 증권은
투자자들이 증권의 발행자를 직접 대면할 수 없다는 특성때문에 투자자보호
를 위해 유가증권가치의 적정성과 공정거래질서 확립에 감독의 주안점이
두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보험자산은 회사의 것이 아니라 보험가입자소유라는 인식하에
피보험자보호를 위한 건전한 자산운용여부가 보험감독의 주요대상이 된다는
지적이다.

감독원통합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각 분야의 전문성은 무시될 수 없는
수준에 와있고 전문성확보를 위해서는 감독기구의 중복현상이 있더라도
감독효율성을 위해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세계에서 3개분야를 통합 감독하는 국가는 노르웨이뿐으로
은행과 증권의 겸업주의를 채택하여 둘을 묶어 감독해오던 독일도 올해초
연방증권거래감독원을 분리독립시켰으며 일본도 92년 증권거래등감시위원회
를 설치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더욱이 이미 공룡으로 불리는 재경원이 3면에 날을 세운 칼을 갖게되면
그 앞에서는 누구도 큰 소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지적하고 있다.

재경원이 내놓은 안을 쉽게 거두어 들이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서 "3면날"을
가진 금융감독원은 결국 태동하게될 가능성이 많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곧 자리를 내줘야 할 운명인 세 감독원장들도 "나가라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수긍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보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은 웬일일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6일자).